
20년 넘게 적금만 고집했던 제가 틀렸다는 걸, 막내 팀원의 말 한마디로 알아버렸습니다. "팀장님, 저 S&P 500 ETF 2년 만에 30% 넘었어요." 그날 밤 계산기를 두드리며 제가 느낀 건 후회보다는 당혹감이었습니다. 같은 돈으로 누군가는 두 배 넘게 불리고 있었으니까요.
적금이 안전하다는 믿음, 숫자로 따져보면
20년 전 부모님이 가르쳐 준 재테크는 단순했습니다. 월급 받으면 적금 넣고, 만기 되면 다시 넣고. 그 방식이 나쁜 게 아니었습니다. 예전에는 은행 금리가 10~20%에 달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 기조 속에서 시중 예적금 금리는 3% 안팎에 머물고 있습니다. 문제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이 금리를 거의 따라잡는다는 점입니다. 지난 20년간 국내 연평균 물가 상승률은 약 3% 수준이었습니다(출처: 한국은행). 적금 이자가 물가 상승분을 겨우 상쇄하는 구조라면, 사실상 실질 수익은 0에 가깝습니다.
직접 계산해 봤습니다. 2005년부터 매달 50만 원씩 20년 동안 금리 3.5% 적금에 넣으면 2025년에 약 1억 5천만 원이 됩니다. 같은 금액을 S&P 500 ETF에 넣었다면, 지난 20년 연평균 수익률 약 10%를 기준으로 4억 2천만 원 수준이 됩니다. 똑같은 돈, 똑같은 기간인데 차이가 2억 7천만 원입니다. 이걸 계산하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물론 연평균 10% 수익률을 그대로 믿어도 되냐는 의문은 당연히 듭니다. 저도 그 숫자를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시작 시점과 은퇴 시점의 시장 상황에 따라 실제 수익률은 상당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과거 수익률이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건 투자의 기본 전제이기도 하고요.
S&P 500 ETF가 뭔지, 처음엔 저도 몰랐습니다
S&P 500이란 미국 증시에 상장된 기업 중 시가총액, 수익성, 유동성 등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500개 대형 우량 기업을 모아 놓은 지수입니다. 여기서 시가총액이란 해당 기업의 주식 전체를 현재 주가로 환산했을 때의 총가치를 의미합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같은 기업들이 포함되며, 매 분기 재심사를 통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기업은 탈락시킵니다.
ETF(상장지수펀드)란 이 지수의 수익률을 그대로 따라가도록 설계된 금융상품으로, 주식처럼 증권 거래소에서 사고팔 수 있습니다. 즉 S&P 500 ETF 한 주를 사면 미국 500대 기업에 분산 투자하는 효과를 얻습니다.
처음 증권사 앱을 열었을 때 TIGER, KODEX, ACE라는 이름들이 나와서 바로 닫아버렸습니다. 두 번째 시도에서야 이것들이 단지 운용사 이름이 다를 뿐, 동일한 S&P 500 지수를 추종한다는 걸 이해했습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만들면 TIGER S&P 500, 삼성자산운용이 만들면 KODEX S&P 500, 한국투자신탁운용이 만들면 ACE S&P 500입니다.
국내 상장 ETF를 고를 때 실제로 제가 확인한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 운용 규모(AUM)가 1조 원 이상인지: 운용 규모가 클수록 상품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거래대금이 충분한지: 하루 거래량이 많아야 나중에 팔 때 불리한 가격에 팔리는 위험이 줄어듭니다
- 총 보수(수수료)가 0.07% 이하인지: 장기 투자일수록 수수료 0.01% 차이도 복리 효과로 누적됩니다
결국 거래량 1위인 TIGER 미국 S&P 500을 골랐습니다. 한 주당 가격이 2만~3만 원다라 치킨 한 마리 값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도 심리적 부담을 낮춰줬습니다.
ISA와 연금저축, 세금 혜택을 모르면 진짜 손해입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ISA 계좌와 연금저축 계좌의 차이를 모르고 시작했다면 꽤 큰 세금을 그냥 냈을 겁니다.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란 하나의 계좌 안에서 예금, 펀드, ETF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통합 관리하면서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계좌입니다. 일반 계좌에서 주식 투자로 수익이 나면 금융투자소득세 또는 배당소득세 15.4%를 내야 합니다. 하지만 ISA 계좌에서는 연 200만 원까지 비과세, 초과분은 9.9% 분리과세만 적용됩니다. 의무 가입 기간은 3년이고, 중도 해지하면 세금 혜택을 돌려줘야 합니다. 이 조건을 모른 채 1~2년 뒤 급하게 해지하면 혜택이 사라집니다.
연금저축 계좌는 더 장기적인 세금 혜택을 제공합니다. 연간 최대 600만 원까지 납입하면 납입액의 16.5%를 연말정산 세액공제로 돌려받습니다. 99만 원을 공짜로 받는 셈입니다. 단, 55세 이전에 인출하면 기타 소득세 16.5%가 부과되며 세금 혜택도 반납해야 합니다. 노후 자금으로 묶어두겠다는 전제가 있어야 유리한 구조입니다.
저는 48세라 은퇴까지 10여 년 정도 남아 있습니다. 연금저축 계좌는 시간적으로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고 판단해서 ISA 계좌와 함께 운용 중입니다. 다만 세제 혜택 구조가 바뀔 수 있으므로, 세부 조건은 금융감독원 또는 각 증권사를 통해 최신 내용을 확인하시길 권합니다(출처: 금융감독원).
좋다고 해서 무조건 넣으면 안 되는 이유
S&P 500이 장기적으로 우수한 성과를 보여왔다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좋은 상품"과 "나에게 맞는 전략"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공부하면 할수록 연령과 투자 기간에 따라 전략이 달라져야 한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예를 들어 2020년 3월 코로나19 충격으로 S&P 500이 한 달 만에 약 30% 폭락했습니다. 그 시점에 1억 원을 투자했다면 7천만 원이 됩니다.30대라면 회복을 기다릴 수 있지만, 제처럼 은퇴가 10년 안으로 들어온 경우엔 하락장이 은퇴 직전에 겹치면 회복할 시간이 부족합니다.
이때 중요한 개념이 자산 배분(Asset Allocation)입니다. 자산 배분이란 주식, 채권, 현금성 자산 등을 투자 목적과 투자 기간에 맞게 비율로 나눠 담는 전략을 말합니다. 주식 비중이 100%인 포트폴리오는 수익률이 높은 대신 변동성(Volatility), 즉 수익률의 오르내림 폭이 크고, 채권 비중을 높이면 변동성은 줄되 기대 수익률도 낮아집니다. 제 경험상 이 부분을 처음부터 설계하지 않으면 하락장에서 감정적으로 매도하게 됩니다.
S&P 500 ETF가 좋다는 의견이 많지만, 저는 자신의 은퇴 시점과 리스크 허용 범위를 먼저 따져보는 게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워렌 버핏이 "대부분의 사람에게 S&P 500 ETF 하나가 최고"라고 했다는 건 사실이지만, 그 "대부분"에 본인이 해당하는지 먼저 확인하는 게 맞습니다.
48세에 처음 증권 앱을 다시 열던 날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늦었다는 두려움보다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중요한 건 어떤 계좌를 쓸지, 어느 ETF를 살지 보다 자신의 재정 상황과 투자 기간을 먼저 파악하는 일입니다. 그다음 ISA 계좌부터 열고 소액으로 시작하는 것, 그게 제가 실제로 택한 순서였습니다. 이 글은 특정 상품을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 전에는 전문 금융 상담사와 상의하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