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사팀에 전화 한 통을 했습니다. 제 퇴직연금이 DB형인지 DC형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게 부끄러웠지만, 솔직히 입사 때 서류에 사인했던 기억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DB형이었고, 회사에 DC형도 함께 운영 중이라는 사실을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50대가 코앞인데 내 퇴직금 구조조차 몰랐다는 현실, 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DC형 전환과 IRP로 퇴직금을 지키는 법
DB형(확정급여형)과 DC형(확정기여형)의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DB형이란 퇴직 시점의 최종 급여를 기준으로 퇴직금을 산정하는 방식입니다. 반대로 DC형이란 회사가 매년 일정 금액을 개인 계좌에 적립해 주고, 그 돈이 그대로 내 자산으로 쌓이는 구조를 말합니다.
문제는 임금피크제에서 발생합니다. 저희 회사는 55세부터 임금피크제가 시작됩니다. 지금은 7년 뒤 얘기처럼 들리지만, DB형에 그냥 남아 있으면 20년 넘게 쌓아온 퇴직금이 마지막 몇 년의 깎인 급여 때문에 함께 줄어드는 구조가 됩니다. 이걸 확인하고 나서 DC형으로 전환 신청을 바로 했습니다. 이미 쌓인 자산은 건드릴 수 없다는 점이 결정적이었습니다.
DC형으로 전환한 김에 IRP 계좌도 새로 개설했습니다. IRP(개인형 퇴직연금)란 퇴직금을 받을 때 세금을 이연하고 연금 형태로 나눠 받을 수 있게 해주는 전용 계좌입니다.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으면 퇴직소득세가 한 번에 전부 부과되지만, IRP로 이체해 연금으로 나눠 받으면 수령 기간에 따라 세금이 최대 40%까지 감면됩니다. 수령 1년 차부터 10년 차까지는 30%, 11년 차 이후부터는 40% 감면 혜택이 적용됩니다. 목돈 욕심에 이 선택을 놓치는 분들이 많다는 게 이 부분을 공부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대목입니다.
DC형 전환과 IRP 활용을 결정하기 전에 인사팀에서 확인해야 할 두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 현재 내 퇴직연금 유형이 DB형인지 DC형인지
- 회사에서 두 제도를 동시에 운영 중인지, 전환 신청 가능 시점은 언제인지
단, DC형 전환은 회사가 두 제도를 모두 운영하는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인사팀에 물어보기 전에는 이것도 몰랐던 게 솔직한 제 상황이었습니다.
절세 삼각편대와 ETF 포트폴리오로 복리를 굴리는 법
퇴직연금 구조를 정리한 다음에는 세금을 얼마나 아낄 수 있느냐가 핵심이었습니다. 여기서 절세 삼각편대라고 불리는 세 가지 계좌 조합이 중요해집니다. 연금저축(연 600만 원), IRP(연 300만 원)를 합산해 연간 900만 원까지 납입하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고, 환급액은 최대 148만 5천 원에 달합니다. 여기에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를 더하면 절세 효과가 한 단계 더 올라갑니다.
ISA란 주식, ETF, 펀드 등 다양한 금융 상품을 하나의 계좌 안에서 운용하며 비과세·분리과세 혜택을 받는 절세 전용 계좌입니다. 연간 2천만 원, 총 1억 원까지 납입이 가능하고, 이 계좌 안에서 발생한 수익에 대해서는 200만 원까지 비과세, 초과분은 9.9% 분리과세가 적용됩니다. 일반 계좌에서 ETF 투자 시 배당소득세 15.4%가 부과되는 것과 비교하면 체감 차이가 상당합니다. 거기에 ISA 만기·해지 후 60일 이내에 연금 계좌로 이체하면 이체 금액의 10%, 최대 300만 원까지 추가 세액공제가 생깁니다.
제 경험상 이 세 계좌를 연결해서 쓰면 단순히 세금을 아끼는 것 이상의 효과가 있습니다. 세금으로 나갔어야 할 돈이 그대로 원금에 더해져 복리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세금을 아끼는 게 곧 추가 투자 원금이 되는 구조입니다.
ETF 포트폴리오 구성은 50대라는 연령을 반드시 감안해야 합니다. 20대처럼 전부 성장주에 넣었다가 크게 손실이 나면 회복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입니다. 주식형 60%에 채권·배당형 40%의 비율이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잡는 균형점으로 거론됩니다. S&P 500 인덱스 펀드의 장기 연평균 수익률은 약 10% 수준으로, 배당 재투자를 포함한 역사적 수치입니다(출처: S&P 글로벌).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제 생각을 더하자면, 미국 테크 탑 10 ETF에 20%를 배정하는 방식은 50대에게 다소 공격적일 수 있습니다. 애플,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술주는 성장 잠재력이 높지만 변동성도 그만큼 큽니다. 개인의 리스크 허용 범위에 따라 이 부분을 배당 성장형 ETF나 좀 더 분산된 성장 ETF로 대체하는 것도 합리적인 선택지입니다.
보험 정리도 이 흐름에서 빠질 수 없습니다. 저도 보험이 일곱 개나 되어 매달 45만 원이 넘게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실손의료보험과 암보험 두 가지만 남기고 나머지를 정리하니 월 20만 원 이상이 남았고, 그 돈을 연금저축 ETF 적립으로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2025년 기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1%, 시중 예금 금리는 2.8~2.95% 수준으로 세금과 물가를 빼면 실질 수익률은 거의 0에 가깝습니다(출처: 한국은행). 예금에 그냥 묻어두는 것이 사실상 자산이 녹아내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50대에게 남은 10년에서 15년은 복리(이자에 이자가 더해지며 자산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늦었다는 생각을 접고, 지금 당장 인사팀에 퇴직연금 유형을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그게 제가 했던 가장 작은 행동이었고, 그 전화 한 통이 꽤 많은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정리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투자 결정은 반드시 전문가 상담을 병행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