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 입출금식 예금에만 600조 원이 묶여 있습니다. 저는 이 숫자를 처음 접했을 때 놀랍다기보다 안타깝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 돈의 상당 부분이 물가 상승률도 따라잡지 못하는 2%대 금리 상품에 잠들어 있을 테니까요. 퇴직연금을 어디에 넣어야 하는지, 지금 폭락장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직접 겪어보며 느낀 것들을 솔직하게 정리해 봤습니다.

왜 퇴직연금이 아직도 예금에 묶여 있는가
"퇴직금은 원금 보장이 중요하다"는 말이 예전에는 맞았습니다. 금리가 두 자릿수이던 시절에는 은행 예금에 넣어도 충분히 자산이 불어났고, 아파트 가격도 지금처럼 천문학적이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DB형 퇴직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2% 안팎입니다. DB형이란 기업이 근로자의 퇴직금을 대신 관리하는 방식으로, 손실을 피하기 위해 대부분 예금 상품으로 운용합니다. 문제는 물가 상승률이 그 2%를 이미 넘어섰다는 점입니다.
제 후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15년 봄, 서른둘이던 후배가 DC형 퇴직연금 계좌에 처음 돈이 들어왔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DC형이란 근로자가 직접 운용 방법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본인이 어떤 상품을 고르느냐에 따라 수익률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후배는 당연하다는 듯이 원리금보장 예금 상품에 넣으면 되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55세에 타는 돈이야, 지금부터 23년이야"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날 저희 둘이 같이 계산기를 두드렸는데, 예금 2% 복리로 23년을 굴리면 원금의 약 1.56배였습니다. S&P 500 추종 ETF의 역사적 연평균 수익률 9%를 적용하면 원금의 여섯 배 가까이 됩니다. 후배는 그날 바로 ETF로 전환했고, 10년이 지난 지금 그 계좌는 원금의 두 배를 넘겼습니다.
S&P 500 지수의 장기 연평균 수익률은 약 9~10%로 집계됩니다(출처: S&P Global). 같은 기간 코스피도 2000년 이후 최근까지 연평균 13%에 달하는 구간이 있었습니다. 지수는 개별 기업과 달리 구성 종목이 계속 교체되기 때문에, 어느 한 기업이 무너져도 지수 자체는 살아남습니다. 지수를 추종하는 ETF에 적립식으로 투자하는 것이 사실상 국룰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폭락장 속 개별 주식 분석,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지금 증시가 출렁이는 이유를 하나만 꼽기는 어렵습니다. 스페이스 X 상장, FOMC 금리 결정, 트럼프발 관세 리스크까지 겹쳐 있습니다. FOMC란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로, 정기적으로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기구입니다. 금리 방향이 결정될 때마다 글로벌 자금이 이동하기 때문에, 그 전후로 변동성이 커지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저점을 못 잡으니 그냥 물린다 생각하고 투자하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저는 이 말이 절반만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지수 ETF에는 완벽하게 적용됩니다. 하지만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개별 종목에 이 논리를 그대로 가져오면 위험합니다. IT 버블 당시 노키아는 고점 대비 수십 년이 지나도 회복하지 못했고, 인텔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수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개별 주도주에 이식하는 순간, 투자자는 손실을 보면서도 "결국 오르겠지"라는 믿음으로 버티다가 사이클 전환을 놓칩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현재 주가 기준으로 PER(주가수익비율)이 약 6배 수준입니다. PER이란 현재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시장이 이 기업의 이익을 얼마나 높게 평가하는지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역사적으로 반도체 업종의 PER이 10배 수준까지 회복된 선례를 감안하면, 40만 원 내외까지 가는 시나리오가 억지스럽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게 1년 후인지 3년 후인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삼성전자 우선주는 지금 본주와의 괴리율이 30%까지 벌어진 상태입니다. 괴리율이란 본주와 우선주의 주가 차이를 백분율로 표시한 것으로, 역사적 평균이 22%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 우선주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구간입니다. 여기에 특별 배당까지 감안하면 배당수익률이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3% 이상 나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간에서 우선주를 눈여겨보는 투자자가 많지 않습니다. 바로 그 점이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AI 인프라 사이클에서 전 세계적으로 부족한 두 가지를 꼽으라면 메모리 반도체와 전력입니다. 데이터센터 수요 급증으로 변압기, 전선,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가 동시에 치솟고 있는 구조입니다. ESS란 생산된 전력을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공급하는 장치를 말합니다. 전력주 차트가 삼각형 수렴 패턴으로 꺾인 것은 변동성이지, 산업 자체가 꺾인 신호는 아닙니다. 실적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면 보유 전략을 유지하는 것이 맞습니다.
아래는 지금 변동장에서 제가 직접 정리해 본 대응 원칙입니다.
- 지수 ETF(S&P 500, 코스피 200)는 적립식 유지. 폭락장일수록 평균 매입 단가가 낮아지는 구조
- 개별 종목은 실적을 먼저 확인. 이익이 훼손된 종목은 과감하게 교체
- 삼성전자 우선주는 본주 대비 괴리율과 배당수익률을 함께 고려
- 전력기기, ESS 관련주는 중국 변수(트럼프·시진핑 협상)를 리스크로 관리
- 스페이스 X 상장 직후 흔들리는 엔비디아, 구글 등은 일시적 수급 이슈로 접근
퇴직연금을 ETF로 바꾸는 것, 지금도 늦지 않았다
한국의 퇴직연금 수익률은 꾸준히 시장 수익률을 밑돌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국내 퇴직연금 평균 수익률은 연 2~3%에 머물러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401(k)이라는 확정기여형 퇴직연금 제도를 통해 지수 ETF에 꾸준히 투자한 사람들이 은퇴 시 10억 원 이상을 손에 쥐는 사례가 많습니다. 401(k)란 미국 세법 401조 k항에 근거한 퇴직연금 제도로, 근로자가 직접 투자 상품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DC형 퇴직연금도 같은 방식으로 운용할 수 있습니다. 퇴직연금 계좌에서 ETF로 변경하는 것은 대부분 앱에서 몇 분 안에 가능합니다. 제가 직접 해보니 복잡한 서류나 방문 절차가 전혀 없었습니다.
리밸런싱이란 자산 배분 비율이 목표에서 벗어났을 때 다시 맞추는 작업을 말합니다. 제 경험상 리밸런싱을 꾸준히 하는 투자자가 장기적으로 훨씬 좋은 성과를 냅니다. 손절을 두려워하지 않고 실적이 무너진 종목을 교체하는 것, 그리고 지수 ETF를 꾸준히 적립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지금 같은 변동장에서 가장 현실적인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아래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