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9천을 넘은 날, 주변에서 "이제 좀 돈 벌었냐"는 말을 들으셨습니까? 저는 그 질문에 선뜻 답을 못 했습니다. 삼성전자 주식이 없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기분이 그렇게 좋지가 않았습니다. 지수는 역사적 신고가를 찍고 있었고, 집 근처 상가에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는 폐업 안내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9천이라는 숫자가 내 삶과 얼마나 연결돼 있는지, 이게 지금 우리가 풀어야 할 진짜 문제입니다.

반도체 수출이 역대 최고인데 왜 지갑은 그대로인가
6월 1일부터 20일까지 국내 반도체 수출액이 255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조업일수로 나누면 하루 평균 17억 달러, 전월 대비 약 4% 이상 증가한 수치입니다.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이 삼성전자를 역전하는 장면이 연출될 만큼, 지금 반도체 섹터의 온도는 뜨겁습니다(출처: 관세청).
SK하이닉스의 경우 ADR 상장 기대감이 주가를 끌어올리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ADR(American Depositary Receipt)이란 미국 시장에서 외국 기업의 주식을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예탁증서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한국 거래소에서 1,000원에 거래되던 주식이 미국 거래소에서 2,000원짜리로 재평가받을 수 있는 통로가 열리는 겁니다. 여기에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 편입 가능성까지 더해지면 패시브 자금, 즉 특정 지수를 그대로 추종하는 ETF 자금이 자동으로 유입되는 수급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습니다.
반도체 수출이 이렇게 좋은 배경에는 가격 상승이 자리합니다. D램 모듈은 전달 대비 9%, 낸드 플래시는 28%, SSD는 25% 각각 증가했습니다. 출하량이 늘어서가 아니라 평균 판매 단가(ASP)가 올라서 매출이 커진 구조입니다. 여기서 ASP(Average Selling Price)란 단위 제품당 평균 판매 가격을 뜻하며, ASP 상승은 출하량 증가와 달리 영업이익률을 직접적으로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습니다.
저는 20년 넘게 증권사 리서치와 자산운용사를 거쳐 지금은 재무팀장 자리에 있습니다. 솔직히 이번처럼 지수가 치솟는데 주변이 이렇게 조용한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직원들 대화를 들어보면 주가 얘기보다 점심값 얘기가 더 깁니다. 수출 통계는 역대 최고지만, 그 온기가 골목까지 내려오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따져봐야 합니다.
이익이 어디로 흘러가는지가 핵심입니다. 반도체 업종은 고용 유발 계수가 다른 제조업에 비해 낮습니다. 대규모 설비 투자(CAPEX) 중심의 산업 특성상, 같은 매출 규모라도 고용이나 협력사 납품 단가로 퍼지는 돈의 양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낙수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적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코스피 PER(주가수익비율)을 보면 현재 7.6배 수준으로, 대만·일본·미국은 물론 글로벌 신흥국 평균보다도 낮습니다. 여기서 PER(Price-to-Earnings Ratio)이란 기업이 벌어들이는 이익 대비 시가총액이 몇 배인지를 나타내는 밸류에이션 지표입니다. PER이 낮다는 건 이익 대비 주가가 싸다는 뜻이고, 9천을 돌파했어도 절대적으로 고평가 된 상황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9천이니까 폭락이 온다"는 공포 마케팅에 흔들릴 필요는 없습니다.
코스피 상승을 이유로 주가가 떨어져야 한다는 주장,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실적이 받쳐주는 상승을 억지로 꺾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이익이 더 넓게 퍼질 수 있도록 구조를 개선하는 것, 그게 지금 논의돼야 할 방향입니다.
9천 시대의 명과 암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상승 종목 수가 매우 제한적이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 중심으로 수급 쏠림이 심하다
- 반도체 고용 유발 효과가 낮아 자영업·서비스업으로 온기 전달이 느리다
- 주식 투자자 중 절반 이상은 투자 원금이 수천만 원 이하로, 자산 증가 폭에 큰 격차가 있다
- 코스피 PER 기준 글로벌 대비 여전히 저평가 상태로, 추가 상승 여력은 존재한다
코스닥 승강제, 빠른 신호가 필요한 이유
코스닥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이 쏠림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제도 설계의 문제가 아니라 속도와 명확성의 문제입니다.
거래소가 추진 중인 코스닥 프리미어 지수 도입은 방향 자체는 맞습니다. 일정 기준 이상의 우량 종목을 선별해 연기금 수급을 집중시키고, 코스닥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취지입니다. 9월 말 공개를 목표로 매출·영업이익·성장성을 복합적으로 반영하는 방향으로 설계 중이며, 약 70개 내외 종목이 편입 대상이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습니다(출처: 한국거래소).
문제는 제도 발표 전부터 이미 시장에 내용이 흘러나오면서 불확실성이 길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프리미어 편입 기준이 명확해지기 전까지 투자자들은 "내가 들고 있는 종목이 들어가느냐 빠지느냐"를 판단하지 못합니다. 그 결과 대기 자금은 이미 검증된 삼성전자·SK하이닉스로 이동합니다. 코스닥을 살리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코스닥에서 자금을 빼는 기간을 연장하는 역설이 생기는 겁니다.
바이오 섹터 문제도 간과하기 어렵습니다. 바이오텍은 R&D 비용이 크고 이익이 당장 나지 않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R&D(Research and Development)란 제품이나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 비용을 의미하며, 바이오텍 기업은 임상 단계에서 대규모 R&D 지출이 발생해 단기 수익성 지표가 낮게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업종 특성을 무시하고 일률적인 정량 기준으로 편입 여부를 가리면, 사실상 반도체 소부장 중심의 리스트가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게 되면 코스닥 활성화라는 본래 목적과 멀어집니다.
국민연금 리밸런싱 이슈도 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리밸런싱(Rebalancing)이란 자산 배분 비중이 목표치에서 벗어났을 때 이를 다시 조정하는 행위입니다. 코스피가 급등하면서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보유 비중이 설정 기준을 초과했고, 이를 맞추기 위해 약 50조 원 내외의 매도 물량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다만 이 물량이 내일 당장 쏟아지는 게 아니라 연말까지, 혹은 그 이상의 기간에 걸쳐 분산 소화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도하게 공포심을 가질 상황은 아닙니다. 제가 직접 봐온 기관 매매 패턴상, 이런 구조적 매도는 급격히 이뤄지기보다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며 진행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자산 시장의 정책은 타이밍과 의외성이 핵심 변수입니다. 이미 시장이 내용을 알고 있는 정책은 효과가 반감됩니다. 코스닥 활성화 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충분한 내부 검토를 마치고, 업종별 특성을 반영한 기준을 갖춘 상태에서 빠르게 확정하고 시행하는 게 훨씬 효과적입니다.
9천 시대의 온기가 더 많은 사람에게 닿으려면, 결국 코스닥이 살아나야 합니다. 반도체에 쏠린 수급이 바이오, 소부장, 성장주로 분산될 수 있도록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수 숫자보다 그 숫자가 얼마나 넓게 퍼지느냐가 지금 우리가 봐야 할 진짜 지표입니다.
9천이라는 숫자를 보며 기뻐하는 것과, 그 숫자가 실제로 내 삶에 의미 있는지를 따지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저는 두 가지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적이 받쳐주는 상승을 부정하거나 억지로 꺾을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이익이 더 넓은 곳으로 흘러가도록 구조를 다듬는 작업은 멈춰서는 안 됩니다. 관세청 수출 통계를 직접 찾아보고, 코스닥 정책 발표를 눈여겨보면서 시장의 변화를 읽어가는 것, 그것이 지금 투자자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준비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