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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하락과 주식 (항공주 반등, 반도체 갑을 역전, 선반영 리스크)

by 신연금연구 2026. 6. 18.

유가가 떨어지면 항공주가 오른다는 건 누구나 압니다. 그런데 그 논리가 맞을 때 이미 주가는 다 올라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2008년에 그 질문의 답을 고객 돈으로 배웠습니다. 그 이후로 "맞는 논리"와 "지금 살 타이밍"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뼛속으로 믿게 됐습니다.

코스피 상승 흐름 속 삼성전자·SK하이닉스 반도체 독주 장세에서 유가 하락과 항공주·금·구리 등 순환매 투자 전략 점검
코스피 상승 흐름 속 삼성전자·SK하이닉스 반도체 독주 장세에서 유가 하락과 항공주·금·구리 등 순환매 투자 전략 점검

유가 하락과 항공주 반등, 선반영 리스크를 먼저 봐야 합니다

2008년 초, 저는 한 고객에게 페트로차이나를 권유했습니다. 중국 최대 국영 석유기업이고, 중국 경제 성장과 유가상승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고객은 믿고 들어갔고, 그해 여름 WTI 유가는 배럴당 147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그런데 주가는 이미 꺾여 있었습니다.

고객이 전화했습니다. "유가는 오르는데 왜 주가가 떨어져요?"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나중에 분석해 보니 시장은 이미 유가 고점을 선반영(先反映)하고 있었습니다. 선반영이란 어떤 호재나 악재가 실제로 발생하기 전에 시장 참여자들이 미리 주가에 반영시켜 버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주가가 뉴스보다 항상 먼저 움직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이번 중동 종전 합의와 호르무즈 해협 개방 소식이 나오면서 유가가 하락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WTI 기준으로 한때 120달러에 육박했던 유가가 80달러 아래를 향해 내려오고 있고, 70달러 선까지 추가 하락 가능성도 있습니다. 항공사 입장에서 연료비는 전체 운항 비용의 20~30%를 차지하는 최대 변동비이기 때문에, 유가가 떨어지면 수익성이 직접적으로 개선됩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티웨이홀딩스 등 항공주 전반이 최근 강하게 반등한 배경이 여기 있습니다. 두 달 연속 국제선 유류할증료까지 내려가면서 여객 수요 회복 기대감도 함께 작용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유가가 더 떨어질 거라는 기대가 이미 항공주 주가에 녹아들어 간 지금, 유가 하락 폭이 기대에 못 미치는 순간 주가는 먼저 빠집니다. 항공주를 지금 사는 건 유가 하락에 투자하는 게 아니라, 유가가 더 많이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에 추가로 베팅하는 셈입니다.

지금 항공주에 접근할 때 확인해야 할 핵심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 유가 하락이 기대치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지 여부
  • 여객 수요 회복 속도가 유류할증료 인하 효과를 실제로 받쳐주는지
  • 항공사별 부채비율과 현금 유동성 — 고유가 시기 버티기 위해 쌓인 재무 부담이 해소되고 있는지

달러인덱스(DXY)도 함께 봐야 합니다. 달러인덱스란 유로화, 엔화 등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지수입니다. 종전 합의로 강달러 기조가 약화되면 원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올라가고, 달러 부채 비중이 높은 항공사들의 환차손 부담도 줄어드는 구조입니다. 이 변수까지 맞아떨어지면 항공주 상승 여력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 코스닥 전반이 하락 종목이 상승 종목의 두 배에 달할 만큼 시장 자체가 고르지 않다는 점을 먼저 인식해야 합니다.

메모리 반도체 갑을 역전, 그러나 치킨 게임의 이면도 봐야 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이렇게 빠르게 구조적으로 바뀔 거라고는 5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예전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완전한 을(乙)의 구조였습니다. 고객사가 "100만 개 필요해"라고 하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공장을 짓고 인력을 뽑았는데, 공장이 완공될 쯤이면 경기가 꺾여서 "아, 30만 개만 줘"가 반복됐습니다. 이게 반도체 사이클(Semiconductor Cycle)이었습니다. 반도체 사이클이란 설비 투자와 수요 간의 시차 때문에 공급 과잉과 공급 부족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AI 패권 경쟁으로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메타 같은 하이퍼스케일러들이 데이터 센터를 맹렬하게 짓고 있습니다. HBM(High Bandwidth Memory), 즉 고대역폭 메모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HBM이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극대화한 차세대 메모리로, AI 연산에 필수적인 부품입니다. 더 중요한 건 이 하이퍼스케일러들이 LTA(Long-Term Agreement), 즉 장기 공급 계약으로 2~3년 치 물량을 선입금과 함께 묶어버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수요의 바닥이 단단하게 잠긴 구조입니다.

이 덕분에 SK하이닉스는 올해 영업이익률 76%, 순이익률 63% 수준을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PER(주가수익비율)이 선행 기준 5배에 불과합니다. PER이란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숫자가 낮을수록 이익 대비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의미입니다. 일반적으로 고마진 성장주에 PER 5배는 이례적으로 낮은 수준입니다.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신고가를 뚫고, 마이크론과 웨스턴 디지털까지 신고가에 근접한 흐름이 이 논리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출처: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 현황, Nasdaq).

그러나 제가 보기에 이 방향성에서 짚지 않은 리스크가 있습니다. "AI 패권 경쟁이 치킨 게임 양상"이라는 표현 자체가 이미 패자의 존재를 전제합니다. PC 시대에 IBM이 사라졌고, 스마트폰 시대에 노키아가 사라졌듯, 지금의 AI 인프라 투자 경쟁에서 일부 하이퍼스케일러가 투자 속도를 줄이거나 경쟁에서 탈락하는 순간 메모리 수요는 단기적으로 급감할 수 있습니다. 오라클이 추가 증자를 발표하자 주가가 오히려 빠진 것도, 마이크로소프트·팔란티어·세일즈포스 같은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계속 발목을 잡히는 것도 이 출혈 경쟁의 피로감이 시장에 반영된 결과입니다. B2C 수요, 즉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용 메모리 수요는 이미 가격 부담으로 위축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출처: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지금 이 시장에서 한 가지 방향만 믿고 베팅하기보다는, 상승 시나리오와 리스크 시나리오를 동시에 준비해 두는 것이 현명해 보입니다. 제 경험상, 가장 무서운 투자 실패는 "틀린 논리"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맞는 논리를 너무 확신했을 때" 찾아왔습니다. 반도체와 항공주 모두 방향성 자체는 맞습니다. 다만 지금 가격에 얼마나 많은 기대가 이미 녹아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모든 투자 결정은 본인의 판단과 책임 아래 이루어져야 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kolj2rVJ6w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