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20년 넘게 고객에게 장기투자를 말해왔으면서, 정작 제 연금저축 계좌 수익률이 한 해 시장 평균에 못 미치자 흔들렸습니다. 마이클 모부신의 『운과 실력의 성공 방정식』을 읽으면서 그때 제가 정확히 어떤 실수를 했는지, 통계가 증명해주는 언어로 다시 확인했습니다.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자신을 평가해야 한다는 말이, 이렇게 날카롭게 꽂힌 적이 없었습니다.

사후확신 편향, 제 계좌가 증거였습니다
재작년 연말, 연금저축 계좌를 열어보고 한참을 들여다봤습니다. 시장 평균 대비 꽤 낮은 수익률이었고, 저는 바로 "내가 종목 구성을 잘못 짠 것 같다"는 결론으로 달려갔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게 전형적인 사후확신 편향(Hindsight Bias)이었습니다. 사후확신 편향이란 결과를 알고 난 뒤 그 결과가 처음부터 예정된 것이었다고 느끼는 인지 오류입니다. 주가가 오르면 "오를 만했다"라고, 떨어지면 "떨어질 이유가 있었다"라고 자동으로 이야기를 완성해 버리는 것이죠.
바꾸기 직전 날 점심, 후배가 던진 말이 걸렸습니다. "팀장님, 원칙대로 넣은 거면 결과는 따로 보셔야죠." 그 말이 아니었으면 저는 멀쩡한 계좌를 통째로 뒤집었을 겁니다. 그날 저녁 노트를 꺼냈습니다. 처음 계좌를 설계할 때 적어둔 기준, 자산 비중과 납입 방식, 리밸런싱 시점이 그대로 적혀 있었고, 확인해 보니 기준은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습니다. 그 해 시장이 유독 좋지 않았던 것이었고, 이듬해 수익률은 평균 근처로 돌아왔습니다.
모부신 교수는 이것을 두 항아리 모델로 설명합니다. 실력 항아리에서 뽑은 공은 손에 계속 쥐고 있지만, 운 항아리에서 뽑은 공은 매번 다시 넣고 새로 뽑습니다. 실력이 3인 사람도 운 항아리에서 -4가 나오면 그해 성과는 -1이 됩니다. 제가 겪은 것이 정확히 이 상황이었습니다. 실력 공은 바뀌지 않았는데, 운 공이 나쁘게 나왔던 것이죠.
여기서 제가 가장 걸렸던 대목이 있습니다. 투자 성과가 좋을 때는 "내가 잘 골랐기 때문"이고, 나쁠 때는 "시장이 이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패턴입니다. 이것이 우리 뇌가 기본값으로 작동하는 방식이라는 사실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더 무섭습니다. 2006년 미국 주식 거래 사이트 실험에서 플레이보이 모델 10명 중 5명이 같은 기간 펀드 매니저들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는 사례는 이 맥락에서 읽어야 합니다. 모델들이 실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기 투자 성과는 운에 좌우되기 때문입니다(출처: The Success Equation, Michael Mauboussin).
성공 기업만 골라 분석하는 방식의 문제도 여기서 나옵니다. 짐 콜린스의 『굿 투 그레이트』는 수백만 부 팔린 책이지만, 옥스퍼드 대학의 전략 교수는 이것을 표본 편향(Survivorship Bias)이라고 지적합니다. 표본 편향이란 살아남은 사례만 분석에 포함되고 실패한 사례는 자동으로 제외되는 왜곡입니다. 딜로이트 컨설팅 연구팀이 해당 책에 소개된 288개 기업을 추적했더니 진정으로 위대하다고 할 수 있는 기업은 25%도 되지 않았습니다. 소니의 미니디스크 전략은 훌륭했지만, 초고속 인터넷이라는 운이 반대로 작용한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 사후확신 편향: 결과를 안 뒤 그것이 필연이었다고 느끼는 인지 오류
- 표본 편향: 성공 사례만 분석해 실패 사례를 제외하는 왜곡
- 두 항아리 모델: 실력은 누적되고 운은 매번 초기화된다는 통계적 비유
평균 회귀와 표본 크기, 장기투자의 통계적 근거
지금 저는 연초마다 투자 원칙 몇 줄을 노트에 씁니다. 비중, 납입 방식, 리밸런싱 시점. 연말에는 수익률보다 이 원칙을 지켰는지를 먼저 체크합니다. 이렇게 바뀐 것은 평균 회귀(Regression to the Mean)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나서부터였습니다. 평균 회귀란, 현재 성과가 평균보다 현저히 높거나 낮다면 다음 결과는 평균 쪽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는 통계 원리입니다.
모부신 교수가 제시한 공식은 단순합니다. 예측 성과 = 평균 + 축소 계수(Shrinkage Factor) × (현재 성과 - 평균). 여기서 축소 계수가 핵심입니다. 체스처럼 결과가 100% 실력으로 결정되는 활동은 계수가 1에 가깝습니다. 반면 투자처럼 운의 영향이 큰 활동은 계수가 0에 가깝습니다. 펀드매니저 과거 수익률의 경우 평균 초과분의 80%를 할인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것이 "작년에 1등 한 펀드를 고르면 왜 잘 안 되는가"를 통계적으로 설명하는 근거입니다(출처: CFA Institute Research).
하버드 대학 연구팀이 월스트리트 스타 애널리스트들을 20년간 추적한 결과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최고의 애널리스트'로 선정된 이들이 회사를 옮긴 366건을 분석했더니, 이직 후 대부분이 5년 이상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꽤 오래 멈췄습니다. 제가 그동안 액티브 펀드를 고를 때 주로 본 것이 지난 3년 수익률과 스타 매니저 이름이었으니까요. 그 성과에는 개인의 실력뿐 아니라 회사 리서치 조직의 힘, 당시 시장 환경이 모두 섞여 있었던 겁니다.
표본 크기(Sample Size) 이야기도 제게는 실용적인 충격이었습니다. 표본 크기란 어떤 결론을 내리기 위해 필요한 관찰 횟수를 말합니다. 블랙잭 100판에서는 49%가 돈을 땁니다. 거의 동전 던지기입니다. 그런데 1만 판을 하면 카지노의 우위가 명확해집니다. 주식 시장에서 몇 번 성공하고 실력이라고 믿은 사람은 100판밖에 안 해본 블랙잭 플레이어와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래"가 아니라 "많이"입니다. 3년 동안 주식을 두 번 사고판 사람은 표본 크기가 2인 것이죠.
실력의 역설(Paradox of Skill)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실력의 역설이란, 참가자들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될수록 결과에서 운이 차지하는 비중이 오히려 커진다는 개념입니다. 1941년 이후 메이저 리그에서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가 선수들이 못해진 것이 아니라, 모두의 실력이 올라가 차이가 좁혀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주식 시장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가장 많은 돈과 정보로 경쟁하는 곳에서 개인이 타이밍을 맞춰 초과 수익을 내려는 것은, 통계적으로 운에 투자를 거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농구는 경기당 65번의 공격 기회가 있어 실력 반영 비중이 88% 이지만, 하키는 득점 기회가 적어 운의 비중이 53%에 달합니다. 한 종목에 집중하고 연 1~2회 거래하는 투자는 하키에 가깝습니다. 여러 자산에 분산해 매달 꾸준히 사 모으는 투자는 테니스에 가까워집니다. 제가 결국 연금저축 계좌를 건드리지 않고 원칙대로 유지한 것은, 이런 논리 위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투자에서 운과 실력을 실제로 구분하는 방법이 있나요?
A. 모부신 교수가 제안한 가장 실용적인 기준은 "의도적으로 질 수 있는가"입니다. 체스나 달리기는 의도적으로 못하면 지지만, 복권이나 룰렛에서는 의도적으로 잃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일 당장 떨어질 종목만 골라 의도적으로 잃으라면 할 수 없죠. 이는 투자가 운의 영향이 큰 활동임을 보여주는 직관적인 기준입니다.
Q. 과정이 옳았는데 결과가 나쁘면 그냥 기다리면 되나요?
A. 이 점이 가장 조심스러운 부분입니다. "과정이 옳았다"는 판단이 결과를 합리화하는 핑계로 변질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 점이 걸렸습니다. 과정 평가가 의미를 가지려면, 투자 원칙이 처음부터 객관적으로 설계되어 있어야 합니다. 비중, 납입 방식, 리밸런싱 기준이 미리 문서화된 상태여야 나중에 "지켰는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Q. 수익률 상위 펀드를 고르는 게 왜 잘 안 되는 건가요?
A. 평균 회귀와 축소 계수 때문입니다. 투자는 운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과거 수익률의 평균 초과분 중 80%는 할인해서 봐야 합니다. 하버드 연구에서도 스타 애널리스트가 이직 후 5년 이상 슬럼프를 겪었습니다. 그 성과에는 개인 실력뿐 아니라 회사 조직력과 당시 시장 환경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Q. 표본 크기를 키우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두 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시간을 통해 표본을 늘리는 장기 투자, 그리고 자산 종류를 통해 표본을 늘리는 분산 투자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래"가 아니라 "많이"입니다. 10년을 투자해도 거래 횟수가 두 번이면 표본 크기는 2에 불과합니다. 매달 꾸준히 여러 자산에 나눠 사 모으는 방식이 통계적으로 운의 비중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결론
이 책을 읽고 나서 제가 바꾼 것은 딱 하나입니다. 연말에 수익률 숫자를 보기 전에, 먼저 원칙을 지켰는지 체크합니다. 투자 실력이란 종목 선택 능력이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의 일관성이라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이 맞았는지 확인하려면 충분한 표본이 쌓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 이 두 가지가 제게는 가장 실용적인 결론이었습니다.
포춘 쿠키 번호로 로또 2등에 당첨된 110명은 다음 주에 다시 당첨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45년 동안 체커 챔피언이었던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사람도 이길 수 없었습니다. 투자는 그 사이 어딘가에 있고, 복권 쪽에 꽤 가깝습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올바른 투자 접근법의 시작이라는 모부신 교수의 결론은, 저처럼 수십 년 장기투자를 말해온 사람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경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