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가 쉬어야 시장이 건강하다는 말,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삼성전자가 옆으로 기는 동안 삼성 SDI는 한 주에 28%, 현대중공업은 24%가 올랐습니다. 상대적 박탈감이 딱 제 얘기였는데, 이게 오히려 좋은 신호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비로소 이해가 됐습니다.
삼성전자가 멈춘 이유, 그리고 선순환의 실체
일반적으로 지수가 오르려면 시가총액 1위 종목이 함께 올라야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꼭 맞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최근 3일간 코스피 역사적 신고가를 경신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의 주간 상승률은 0.69%에 불과했습니다. 반도체가 이끈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핵심 개념이 순환매입니다. 순환매란 시장의 자금이 한 섹터에 고정되지 않고 다른 섹터로 이동하며 번갈아 상승을 이끄는 흐름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반도체가 쉬는 동안 2차 전지와 조선이 달리고, 그 자금이 다시 반도체로 돌아오는 구조입니다. 이게 제대로 작동하면 지수는 한 번의 급등과 급락 없이 꾸준히 우상향 하게 됩니다.
저도 삼성전자를 들고 있으면서 SDI나 현대중공업이 뜨는 걸 볼 때마다 갈아타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선순환 구조에서 가장 위험한 행동이 바로 그겁니다. 순환매 장세에서 매번 가장 많이 오른 섹터로 따라가면, 도착할 때쯤은 이미 고점 부근인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이 기간 연기금이 3일 연속 순매수를 기록했고, 외국인과 기관이 매도세를 보이는 와중에도 비차익 프로그램 매도 1조 원을 시장이 고스란히 받아냈습니다. 비차익 프로그램 매도란 차익거래와 무관하게 기관 등이 전략적으로 매도하는 물량을 뜻하는데, 이 1조 원을 개인 매수세가 흡수했다는 게 시장 강도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출처: 한국거래소).
이 상황에서 제가 배운 현실적인 전략은 비중 조절입니다. 비중 조절이란 보유 종목 전체를 교체하는 게 아니라, 포트폴리오 내에서 상승 모멘텀이 강한 섹터의 비중을 10~20% 범위에서 조정하는 방법입니다. 펀드 매니저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방식이지만, 개인 투자자는 전체를 통째로 바꾸거나 아예 그냥 두는 양극단으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한 가지 보충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비중 조절이 수익률에 실제로 얼마나 차이를 만드는지, 그리고 잦은 매매로 인한 거래세와 증권거래세 부담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중 조절 전략을 실행하기 전에 이 비용 구조를 함께 따져보는 것이 맞습니다.
선박 엔진이 데이터센터로 간다는 내러티브 전환
조선주를 배 만드는 회사라고만 봤다면, 이번 뉴스는 꽤 당황스러울 수 있습니다. 제가 처음 이 내용을 접했을 때 솔직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습니다. 선박 엔진 기업이 데이터센터 기업으로 전환한다는 내러티브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연결이었습니다.
핵심은 전력 안정성입니다. 데이터센터는 전압이 불안정하면 치명적인 손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절대 조건입니다. 가스터빈 방식이 출력은 높지만 전압 안정성 면에서는 한계가 있는 반면, 선박에 사용되는 4 행정 엔진은 출력이 다소 낮아도 정밀한 전원 공급이 가능합니다. 여기서 4 행정 엔진이란 흡입·압축·폭발·배기 4단계로 작동하는 방식으로, 회전수와 출력을 정교하게 제어할 수 있어 발전기 용도에 적합합니다.
실제로 국내 선박 엔진 기업이 미국 데이터센터 기업에 약 6,720억 원 규모의 납품 수주를 공시했고, 이는 해당 기업 엔진 부문 연간 매출의 약 15%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이 공시 이후 엔진 제작사뿐 아니라 소재 공급 후방 기업들이 20% 이상 급등하는 낙수 효과가 이어졌습니다.
연료 방식도 흥미롭습니다. 이 엔진들은 듀얼 퓨얼(Dual Fuel)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듀얼 퓨얼이란 디젤과 LNG, 또는 디젤과 암모니아처럼 두 가지 연료를 교체해 가며 사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향후 탄소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선박 업계에서 먼저 개발된 기술입니다. 데이터센터가 탄소 중립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 기술이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반도체 측에서도 긍정적인 재료가 겹쳤습니다. 중국 CXMT(창신 메모리)가 HBM3 양산을 내년 이후로 연기했다는 소식이 나왔습니다. HBM3란 고대역폭 메모리(High Bandwidth Memory)의 3세대 제품으로, AI 연산에 필수적인 반도체입니다. 발열 문제로 양산에 실패한 CXMT와 국내 기업 간의 기술 격차가 최소 5년 이상으로 확인됐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8% 급등했고,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16일 연속 상승을 기록했습니다(출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EDGAR).
이번 반도체 상승을 이끈 재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CXMT HBM3 양산 실패 및 5년 이상 기술 격차 확인
- 엔비디아가 구글 클라우드 4세대 인프라에 베라 럼 칩 공급 계약
- 일본 지진으로 인한 낸드 플래시 공급망 불안 우려
- 주요 기업들의 호실적 발표로 시장 컨센서스 상회
모건스탠리 숀 킴 애널리스트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합산 영업이익을 내년 1,030조 원으로 전망한 보고서도 나왔습니다. 방향성 참고용으로 의미 있는 수치이지만, 이처럼 극단적인 숫자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신뢰 구간과 전제 조건을 함께 따져야 합니다. 1분기 기준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57조 수준인데, 연간 428조가 되려면 남은 분기 평균 120조를 넘겨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방향은 맞더라도 숫자 자체에 과도한 기대를 거는 것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지금 시장이 좋다는 건 분명하지만, 좋은 장일수록 빠르게 수익을 내야 한다는 조급함이 오히려 실수를 부릅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 보니, 순환매 장세에서 대표 종목을 들고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연간 목표 수익률을 한 주 만에 달성할 수 있는 구간이 생깁니다. 지금은 엉뚱한 종목을 피하는 게 잘 고르는 것만큼 중요한 시기입니다. 레버리지 ETF처럼 고위험 상품에 손을 뻗기 전에 기본 포트폴리오가 탄탄한지를 먼저 점검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