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10%의 콜옵션 행사 기한이 만료됩니다. 그 자리를 삼성전자가 채울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저는 2021년에 써둔 메모를 꺼내 다시 읽었습니다. "현대차와 삼성이 로봇에서 만나는 날이 오면 어떻게 될까." 그 메모가 현실이 될 수도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삼성의 현금 150조와 소수지분 전략의 한계
삼성전자가 올해 상반기 기준 현금성 자산 150조 원을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 있습니다. 이는 엔비디아조차 보유하지 못한 규모입니다. 문제는 이 돈을 어디에 쓰느냐입니다. 삼성전자의 ROE(자기 자본이익률)가 낮다는 지적이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ROE란 기업이 주주의 자본으로 얼마나 효율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돈을 벌어놓고 제대로 쓰지 못하면 자본만 커지고 수익률은 오히려 떨어집니다. 한국 기업들이 전통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저평가를 받아온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삼성전자 CFO가 올해 초 로봇을 포함한 미래 성장 분야의 M&A와 지분 투자 기회를 검토한다고 밝힌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읽어야 합니다. M&A(인수합병)와 지분 투자란 외부 기업의 전략적 자산을 빠르게 확보하는 방식으로, 설비 증설 같은 내부 투자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치킨 게임, 즉 경쟁사들이 동시에 생산 능력을 확장하다 공급 과잉으로 공멸하는 구조를 피하면서도 신사업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삼성전자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10% 미만 소수지분을 취득한다면, 실제로 얻는 것이 무엇이냐는 점입니다. 소수지분이란 경영권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수준의 주식 보유를 의미합니다. 의결권도 사실상 제한적이고, 제품 로드맵이나 기술 방향을 좌우할 힘도 없습니다. 2021년 현대차가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할 때 저는 팀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동차 공장에서 사람 손이 들어가야 하는 공정을 로봇으로 대체하면 어떻게 되겠어? 그리고 공장에서 검증되면 외부에 팔 수 있어. 현대차 공장이 세계 최고의 로봇 실증 현장이 되는 거야." 그 논리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하지만 삼성이 10%짜리 지분으로 그 생태계에 어떻게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삼성전자가 보스턴다이내믹스와 진짜 협력을 원한다면, 지분 취득보다 오히려 LTA(장기 공급 계약)나 기술 협력 협정이 더 직접적인 수단일 수 있습니다. LTA란 일정 기간 동안 특정 부품이나 기술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로 약속하는 계약 방식입니다. 반도체, 배터리, 카메라 모듈 같은 핵심 부품을 삼성이 공급하기로 계약을 맺는다면, 지분 없이도 로봇 사업의 핵심 파트너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지분 인수 이슈를 투자 관점에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삼성전자는 현금이 풍부하지만 ROE 개선 압박이 큰 상황입니다.
- 소수지분 취득은 상징적 의미는 있지만 경영권 영향력은 없습니다.
- 실질적 협력은 지분보다 장기 공급 계약이나 기술 협력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소프트뱅크의 콜옵션 행사 기한이 이번 주이므로, 결정은 단기간 내 이뤄집니다.
현대·삼성의 로봇 협력, 낭만인가 전략인가
현대차와 삼성은 삼성이 자동차 사업에 진출했던 시절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재계에서는 두 그룹이 전략적으로 엮이는 것 자체가 드라마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실제로 현대차는 보스턴다이내믹스를 그룹의 미래 핵심 자산으로 키우고 있습니다. 정의선 회장이 개인 지분 23%를 직접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이 회사가 단순한 기술 투자를 넘어 승계 지배구조와도 맞닿아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지분 구조를 보면, 소프트뱅크가 10%를 보유하고 나머지 대부분을 현대 계열이 갖고 있습니다. 이 회사가 IPO(기업공개)를 진행할 경우, 정의선 회장이 개인 지분 일부를 매각해 마련한 자금으로 그룹 지배구조 재편의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업계에서 거론됩니다. IPO란 비상장 기업이 주식을 공개 발행해 증권 시장에 등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맥락에서 삼성이 지분을 사들이는 것은 단순한 재무 투자가 아니라, 현대 그룹의 로봇 사업과 미래 지배구조에 간접적으로 동참하는 행위로 읽힐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그림이 곧장 현실이 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뉴스가 나올 때마다 "협력 시너지"라는 단어가 먼저 등장하고, 구체적인 계약이나 실행 로드맵은 한참 뒤에 나오거나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로봇 기업들과 테슬라 옵티머스가 가져가는 속도를 생각하면, 한국 기업들이 협력의 명분을 쌓는 데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국 로봇 산업의 현황을 보면,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로봇 시장 규모는 2022년 기준 약 5조 9,000억 원으로 매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출처: 산업통상자원부). 또한 한국로봇산업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국내 로봇 제조 기업 수는 2,300개사를 넘어섰으며 고용 인원도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로봇산업협회). 이 숫자들은 보스턴다이내믹스를 둘러싼 삼성과 현대의 움직임이 단순한 지분 거래가 아니라 산업 패권의 선점 경쟁임을 보여줍니다.
제가 2021년 메모에 적어뒀던 질문이 결국 이것이었습니다. 현대차와 삼성이 만난다면, 로봇 생태계의 핵심 수직계열화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그 만남의 형식이 소수지분 취득인지, 장기 공급 계약인지, 아니면 합작법인 설립인지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달라집니다. 뉴스의 낭만을 따라가기 전에 그 형식을 먼저 따져봐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삼성전자의 이번 행보가 진짜 전략인지, 아니면 150조 원 현금이 만들어낸 기대감인지는 콜옵션 기한 이후 발표 내용을 보면 어느 정도 가늠이 될 것입니다. 소수지분 인수로 끝난다면 상징적 협력의 시작으로 읽는 것이 맞고, 장기 공급 계약이나 기술 협력 협정이 함께 발표된다면 그때는 진지하게 다음 그림을 그려봐도 될 것입니다. 투자 판단은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