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종목에 레버리지를 쓰면 안전할까요? 저는 그 질문을 들을 때마다 20년 넘게 금융 현장에서 봐온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가장 많이 다친 사람은 나쁜 종목을 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좋은 종목에 잘못된 구조로 들어간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 종목 레버리지 상장 이후 시장이 보여주는 흐름이 딱 그 패턴입니다.

레버리지 상장 직후 시장이 교란된 이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기초지수로 하는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가 상장되자마자 시장 분위기가 급변했습니다. 코스닥 중소형주,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바이오, 2차 전지까지 이틀 연속 초토화됐습니다. 상장 당일 해당 ETF 거래대금만 10조 원에 달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저는 이게 전혀 놀랍지 않았습니다. 새 금융 상품이 출시될 때마다 첫 한 달은 시장이 흔들립니다. 제가 후배들한테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새 상품은 한 달 지켜보고 들어가라." 공사판 첫날 장비도 없이 뛰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이번 교란의 구조는 단순합니다. 개인 투자자들이 반도체 소부장 종목들을 팔아 단일 종목 레버리지를 샀고, 그 레버리지 자금이 다시 삼성전자·SK하이닉스 현물을 매수하면서 두 종목 주가를 끌어올리는 선순환처럼 보이는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그 사이 코스닥 종목들은 수급이 빠져나가며 무너졌습니다.
외국인 매도도 이 흐름을 가속시켰습니다. 15 거래일 연속 코스피를 순매도한 배경에는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이 있습니다. 리밸런싱(rebalancing)이란 자산 배분 비율이 목표치를 벗어났을 때 이를 원래 비중으로 되돌리는 작업을 말합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코스피 시가총액의 약 5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주가가 급등하면, 이머징 마켓 펀드들은 한국 비중이 목표치를 초과하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팔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환율 상승(원화 약세)과 미국 장기채 금리 급등이 겹치면서 환차손 우려까지 더해졌습니다.
현재 ETF 시장 개인 순매수 상위 종목 구성을 보면 이 쏠림이 얼마나 심한지 한눈에 들어옵니다.
- KODEX 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 TIGER 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 KODEX 삼성전자 단일종목 레버리지
- TIGER 삼성전자 단일종목 레버리지
- SOL 반도체 관련 ETF
상위 10개 중 70~80%가 반도체 단일 종목 집중 상품이었습니다.
음의 복리가 레버리지를 갉아먹는 방식
"삼성전자는 좋은 회사니까 레버리지도 안전하다"는 말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그 생각이 지금 시장에서 가장 위험한 착각이라고 봅니다. 종목의 질과 파생상품의 구조는 완전히 별개입니다.
레버리지 ETF의 핵심 리스크는 음의 복리 효과(negative compounding)입니다. 음의 복리란 자산이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할 때 두 배 짜리 레버리지 상품은 원금 대비 손실이 단순 계산보다 더 크게 누적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하루 5% 오르고 다음 날 5% 빠지면 기초 자산은 거의 제자리에 가깝지만, 2배 레버리지는 마이너스입니다. 횡보 구간이 길수록 레버리지 상품 원금은 조용히 녹아내립니다.
제가 직접 목격한 사례가 있습니다. 2021년 초, 거래처 고객 한 분이 2차 전지 레버리지 ETF에 퇴직금 일부를 넣었습니다. 오를 때는 신이 났습니다. 그해 하반기 조정이 오자 버티지 못했고, 두 배 짜리는 반 토막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녹았습니다. 결국 손절하고 나서야 음의 복리를 몸으로 이해한 케이스였습니다. 그분은 "2차 전지가 나쁜 섹터가 아니잖아요"라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나쁜 섹터가 아니어도, 횡보하면 레버리지는 손해입니다.
닷컴 버블(2000년), 2차 전지 광풍(2021년), 그리고 지금의 반도체 쏠림까지 저는 이런 장을 세 번 봤습니다.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번엔 다르다"는 말이 가장 많이 나오는 시기에 레버리지 상품이 쏟아졌다는 것입니다. 금융투자협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레버리지·인버스 ETF 시장 규모는 최근 수년간 꾸준히 확대되어 왔으며, 개인 투자자 비중이 높아질수록 변동성도 함께 커지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금융투자협회).
박스권 전략과 지금 살아있는 종목들
그렇다면 지금 어떻게 접근하는 게 합리적일까요. 이 질문에 한 가지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매매 스타일에 따라 전혀 다른 접근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삼성전자는 6만 원 선이 깨진 상태에서 거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5만 8천 원대가 단기 지지선으로 언급되는 상황이고, 하이닉스는 상단을 치고 올라가기보다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하는 박스권(box range)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스권이란 주가가 일정한 상단과 하단 사이에서 등락을 반복하는 횡보 구간을 말합니다. 이 구간에서 레버리지를 장기 보유하면 앞서 말한 음의 복리에 그대로 노출됩니다.
밑에서 싸게 매수하신 분들이라면 홀딩 전략도 나쁘지 않지만, 최근 단기 흐름을 노리고 진입하신 분들이라면 박스권 상단에서 일부 익절하고 하단에서 재진입하는 방식이 현실적으로 더 유효해 보입니다.
한편 지금 시장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섹터는 있습니다. 메모리 관련 기판과 MLCC(적층세라믹콘덴서)입니다. MLCC란 전자기기 내에서 전류를 안정시키는 초소형 부품으로, AI 서버와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늘면서 가격이 빠르게 상승 중입니다. 삼성전기, 삼화콘덴서, LG이노텍이 이 흐름을 이끌고 있고, 메모리 기판 쪽에서는 대덕전자, 코리아써키트, 심텍 등의 추세가 아직 살아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DB하이텍도 주목할 만합니다. DB하이텍은 8인치 이하 팹(fab, 반도체 생산 공장)을 운영하며 저전력 반도체를 생산합니다. AI 서버의 전력 소비가 늘면서 저전력 반도체 수요가 함께 증가하고 있고, 실제로 최근 주가 흐름도 이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한국거래소 시장 데이터에 따르면 반도체 대형주 중심의 수급 집중 현상은 코스닥 거래 침체와 맞물려 지수 간 괴리를 역대 최고 수준으로 확대시키고 있습니다(출처: 한국거래소).
지금 이 장은 "무엇을 사느냐"보다 "어떤 구조로 들어가느냐"가 결과를 가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좋은 회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과 레버리지로 횡보 구간을 버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저는 레버리지를 단기 소모품으로만 쓰고, 나머지 자금은 메모리 기판·MLCC 등 아직 덜 과열된 곳에서 기회를 찾는 방식이 지금 시장에서 가장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삼성 SDS, LG CNS처럼 AI 인프라 수혜를 받으면서도 상대적으로 덜 오른 대형 IT 서비스 주도 관심 가져볼 시점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시장분석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