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이번 주 내내 틀렸습니다. 실적이 잘 나오면 주가도 따라간다는 믿음이 산산조각 났거든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모두 어닝 서프라이즈를 냈는데 주가는 반대로 빠졌습니다. 그러다 금요일 아침, 시장이 열리자마자 상판이 터졌습니다. 삼성전자 17%, SK하이닉스 23%대 급등.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이번 하락은 실적의 문제가 아니라 수급의 문제였다는 것을.
레버리지 강제 청산이 만든 바닥
2017년에 팀원과 엔비디아 실적 보고서를 처음 뜯어봤을 때가 생각납니다. "게임용 그래픽카드 회사인데 데이터센터 매출이 왜 이렇게 뛰냐"라고 묻던 그 질문. 그때 저는 구조적 변화라는 말을 썼는데, 지금 이 상황도 본질은 같습니다. 구조는 맞는데 수급이 흔들리는 것뿐이었습니다.
이번 급락의 배경을 보면, 24살의 젊은 헤지펀드 매니저 리오폴드 이션 브레너가 AI 인프라 쪽을 롱(매수 포지션), AI 소프트웨어 소형주를 숏(매도 포지션)으로 잡았다가 마진콜 직전까지 내몰렸습니다. 여기서 마진콜이란 레버리지 투자에서 손실이 일정 한도를 넘으면 증권사가 강제로 포지션을 청산시키는 조치를 뜻합니다. 한 달 만에 포트폴리오가 50% 넘게 빠지자 영국 은행에도 자금을 요청했지만 막아내지 못하고, 결국 헤지펀드 시타델에 포트폴리오를 헐값에 넘겼습니다.
시타델이 인수한 날 밤, 샌디스크를 포함한 AI 인프라 종목들이 하루 만에 20% 넘게 급등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같은 흐름이었습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레버리지 관련 잔고가 정부 목표치인 5조 원에 근접하는 5.4조 원까지 내려왔고, 예탁금 3,000만 원 상향 조치까지 그날 시행됐습니다. 제가 직접 수급 데이터를 들여다봤는데, 일정이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쇼트커버링이라는 개념도 이날 핵심이었습니다. 쇼트커버링이란 공매도 투자자가 손실을 줄이기 위해 급하게 주식을 다시 사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야간 선물이 상한가를 치면서 반도체 소부장 종목들의 공매도 비중이 높았던 만큼, 시장 개장과 동시에 쇼트커버링 물량이 쏟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오테크닉스 12%, 심텍 13%, 테스 21%, PSK 18% 급등이 나왔습니다. 예상이 현실이 됐습니다.
- 레버리지 강제 청산(마진콜): 전 세계적으로 동시다발 진행, 수급 왜곡의 주원인
- 쇼트커버링: 공매도 비중 높은 반도체 소부장 중심으로 급등 촉발
- 예탁금 3,000만원 상향: 레버리지 잔고 정상화 스케줄과 맞물려 수급 개선 신호
- 빅테크 클라우드 매출 확인: 아마존, MS, 구글 모두 AI 인프라 수익성 증명 완료

HBM4 낙수효과, 얼마나 믿어야 하나
낙수효과라는 말을 들으면 저는 약간 경계부터 합니다. 2017년 그 대화 이후로 공급망 수혜주라는 개념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포장되는지 수없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엔비디아 블랙웰 GB300 공급망 분석을 보면 TSMC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SK하이닉스 HBM4, 삼성전자 패키징, 마이크론 메모리가 수혜 라인업으로 자주 거론됩니다. 팩트로서는 정확합니다.
여기서 HBM4란 고대역폭 메모리(High Bandwidth Memory) 4세대를 의미합니다. AI 가속기가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려면 메모리와 프로세서 사이의 데이터 전송 속도가 관건인데, HBM4는 기존 세대 대비 대역폭을 대폭 높여 이 병목을 해소하는 핵심 부품입니다. 현재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 H100, H200 시리즈에 HBM3E를 독점 공급하고 있고, GB300에서는 HBM4가 핵심 병목으로 꼽힙니다(출처: SK하이닉스 공식 사이트).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공급망에 편입된다는 것과 높은 마진을 지속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삼성전자가 HBM4 퀄 테스트(품질 인증)를 통과하는 순간, 엔비디아는 협상 테이블에서 훨씬 강한 카드를 쥡니다. 애플이 부품 협력사에게 매년 단가 인하를 요구해 온 방식과 같은 논리입니다. 실제로 블룸버그도 AI 반도체 공급망 내 단가 협상 압력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삼성전기 컨퍼런스 콜을 들어보면, 10개 기업과 LTA(장기공급계약)를 체결했고 MLCC 전장 쪽은 물량이 없어 못 팔 정도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MLCC란 적층세라믹콘덴서로, 전류 노이즈를 잡아주는 전자부품입니다. 전기차와 AI 서버 모두에 대량으로 들어가는데, 수요가 급증하면서 공급이 달리는 상황입니다. 이 내용이 발표됐음에도 어제 주가가 18% 빠진 것은 수급 문제였고, 오늘 17% 반등은 그 억울함의 회복이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낙수효과라는 표현보다는 "수혜의 조건과 지속성을 따로 봐야 한다"라고 정리합니다. GB300 양산 타임라인이 구체화될수록 공급망 내 단가 협상 구조도 함께 변합니다. 지금 당장의 쇼트커버링 반등과 구조적 이익 성장을 같은 무게로 볼 수는 없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오늘 이렇게 급등한 날 바로 사도 되나요?
A. 저라면 장중에 따라붙지 않겠습니다. 급등 당일에는 차익 실현 물량이 중간에 나올 수 있고, 레버리지 포지션 변화도 오후장까지 이어집니다. 분할 매수를 염두에 두되 종가 부근에서 접근하는 것이 심리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유리합니다.
Q. HBM4와 HBM3E는 뭐가 다른가요?
A. HBM3E는 현재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 H100·H200에 공급 중인 세대이고, HBM4는 그 다음 세대입니다. 대역폭이 더 넓고 전력 효율도 개선됩니다. GB300에서는 HBM4가 탑재될 예정이라 SK하이닉스의 퀄 테스트 통과 여부가 공급망 지형을 결정할 핵심 변수입니다.
Q. 삼성전자가 HBM4 퀄 통과하면 SK하이닉스 주가에 악재인가요?
A. 단순히 악재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AI 서버 수요 자체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어 파이가 커지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독점 공급에서 복수 공급 체계로 넘어가면 엔비디아의 협상력이 높아져 HBM 단가에 하방 압력이 생길 수 있습니다. 수요 성장률과 공급 다변화 속도를 함께 봐야 합니다.
Q. 반도체 소부장 종목이 왜 오늘 더 크게 오른 건가요?
A. 공매도 비중이 높았던 종목일수록 쇼트커버링 수요가 집중됩니다. 야간 선물이 상한가를 치면서 숏 포지션을 들고 있던 투자자들이 손실을 막기 위해 동시에 매수에 나섰고, 여기에 기관과 외국인 수급까지 더해져 이오테크닉스, 심텍, 테스 같은 소부장 종목이 대형주보다 더 강한 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
Q. 시타델이 포트폴리오 인수 후 급등시켰다는 의혹, 어떻게 봐야 하나요?
A. 저는 음모론보다는 펀더멘탈로 보는 쪽에 무게를 둡니다. 인수 직후 급등이 나온 건 사실이지만, 빅테크 실적에서 AI 인프라 수익성이 동시에 확인됐고 레버리지 청산이 마무리됐다는 구조적 신호도 함께 나왔습니다. 시타델이 저가 인수 후 롱 포지션을 추가했더라도 그것이 장의 방향을 혼자 만든 것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론
이번 주가 제게는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실적이 맞았는데 주가가 틀렸던 경험, 그리고 수급이 정리되자마자 억눌렸던 것이 한꺼번에 터지는 장면을 라이브로 봤습니다. 저는 이걸 보면서 레버리지 청산이 끝난 자리가 바닥의 시그널이 될 수 있다는 논리를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다만 오늘의 급등을 구조적 상승의 시작으로 바로 연결 짓는 건 조심스럽습니다. 메이저 수급이 지속적으로 뒷받침해 주는지, 그리고 HBM4 공급망 내 마진 구조가 실제로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다음 분기 실적까지 함께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반등이 반가운 건 맞지만, 바닥을 다진다는 것과 고점을 회복한다는 것은 여전히 다른 이야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