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주식을 발행해 120조 원을 끌어모았습니다. 자사주 매입으로 주주에게 돈을 돌려주던 빅테크가 거꾸로 시장에 손을 내밀기 시작한 겁니다. 이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잠깐 멈칫했습니다. 근데 생각해 보니 오히려 이게 메모리 투자 논리를 강화하는 근거가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빅테크 CAPEX, 멈출 수 있을까
CAPEX(Capital Expenditure)란 기업이 미래 수익을 위해 집행하는 설비·인프라 투자 비용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지금 당장 현금으로 돌아오지 않더라도 미래를 위해 쓰는 큰돈입니다. 빅테크들이 이 CAPEX를 지금 얼마나 쓰고 있냐면, 번 돈을 전부 투자로 돌리고도 모자라 외부 자금까지 끌어 쓰고 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줄어들려면 이 CAPEX 사이클이 멈춰야 합니다. 그런데 구글은 이번에 31년 만에 처음으로 주식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고, 그 규모가 80 빌리언 달러에 달했습니다. 일부는 시장에서 유동적으로 조달하는 ATM(At-The-Market) 방식으로, 일부는 워런 버핏으로부터 100억 달러를 직접 받았습니다. 여기서 ATM 발행이란 특정 시점에 한꺼번에 주식을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시장 상황에 따라 조금씩 매도하며 자금을 확보하는 방식입니다.
저는 이 소식을 보고 오히려 확신이 생겼습니다. 돈이 없어서 유상증자까지 하면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는 건, 이 싸이클이 단순한 경기 흐름이 아니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메타나 마이크로소프트도 비슷한 자금 조달 방식을 검토할 가능성이 생겼고, 그렇다면 메모리 수요가 갑자기 증발할 가능성은 당분간 크지 않다고 봅니다.
HBM이 흔드는 이익 성장 속도
현재 시장 컨센서스 기준으로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 추정치를 보면 2025년 약 47조 원, 2026년 약 270조 원, 2027년 약 360조 원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2025년 44조 원, 2026년 38조 원, 2027년 약 450조 원입니다. 숫자만 보면 2025년에서 2026년으로 넘어오는 구간에서 이익이 5~6배 폭발하는데, 2026년에서 2027년 구간은 증가율이 크게 꺾입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이제 성장 동력이 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숫자를 볼 때 항상 생각하는 건 이익의 질입니다. 2022년 말, 삼성전자가 5만 원대에 머물고 있을 때 저는 팀원과 언쟁 비슷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이익이 줄어드는데 왜 사요?"라고 묻는 팀원에게 저는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이익이 줄어드는 게 시작이야, 끝이야?" 메모리 반도체 투자의 핵심은 이익의 절댓값이 아니라 방향성과 속도입니다.
그 맥락에서 HBM(High Bandwidth Memory)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HBM이란 여러 개의 D램 칩을 수직으로 쌓아 연결한 고대역폭 메모리로, AI 가속기에서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품입니다. 지금 흥미로운 상황은, 일반 D램이나 낸드(NAND) 플래시보다 HBM의 이익률이 더 높다고 알려져 있지만, 최근 들어 범용 D램의 수익성이 올라오면서 오히려 HBM보다 마진이 나은 시점이 생겼다는 겁니다.
이 상황에서 메모리 업체가 협상력을 갖게 됩니다. 실제로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2027년 영업이익이 컨센서스를 크게 상회할 수 있다고 추정합니다. SK증권 추정치 기준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2027년 영업이익 합산액이 960조 원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습니다. 이 숫자가 현실화된다면 지금의 주가가 결코 비싸지 않다는 계산이 성립합니다.
메모리 매도 시점을 판단할 때 제가 보는 핵심 체크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 빅테크 CAPEX 가이던스가 연속 2분기 이상 하향 조정되는 시점
- 영업이익 컨센서스(시장 전망치 평균)가 3개월 연속 하락하는 시점
- 엔비디아 GPU 수요 가시성이 2개 분기 이상 앞을 보지 못하게 되는 시점
블랙스완: 주가가 먼저 안다
메모리 반도체 주식에는 오래전부터 '탄광 속 카나리아' 역할이 있었습니다. 탄광 속 카나리아란 유독가스가 발생하면 사람보다 먼저 반응하는 카나리아처럼, 위험 신호를 가장 먼저 포착하는 선행 지표를 뜻합니다. 메모리가 이 역할을 하는 이유는 채찍 효과(Bullwhip Effect) 때문입니다. 채찍 효과란 공급망 끝단에 위치할수록 수요의 작은 변동이 증폭되어 전달되는 현상입니다. 예컨대 아이폰 수요가 5% 줄어들면 그 여파가 부품, 소재를 거쳐 메모리까지 오면서 20~30% 이상의 수요 충격으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메모리 주가가 이유 없이 빠질 때 가장 긴장합니다. 2022년 말에도 제가 직접 경험했지만, 당시 주가 하락은 분명한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가 해소되는 시점이 매수 타이밍이었습니다. 반대로 지금처럼 모든 논리가 긍정적인데 주가가 이상하게 흘러내린다면, 저는 그게 더 두렵습니다.
블랙스완(Black Swan)이란 예측 불가능하지만 발생하면 시장 전체를 흔드는 극단적 이벤트를 말합니다. 현재 시나리오 중 저는 두 가지를 가장 주의 깊게 보고 있습니다. 하나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칩 로드맵 지연이고, 다른 하나는 대만 밸류체인 이슈입니다. 엔비디아 GPU가 공급망 문제로 출시가 밀린다면 데이터센터 투자 계획 전체가 재조정될 수 있습니다. 대만에 어떤 지정학적 충격이 생기면 TSMC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생산 네트워크가 일시에 멈출 수 있습니다.
반도체 산업의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해서는 한국무역협회도 공급망 취약성 리포트를 통해 지속적으로 경고해 왔습니다(출처: 한국무역협회). 또한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보고서에서 AI 인프라 투자 과잉이 금융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을 별도 챕터로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출처: IMF).
피지컬 AI가 열 메모리의 다음 장
저는 중학교 2학년 정보 교과서에서 아주 흥미로운 단서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교과서에서 컴퓨팅 시스템을 설명할 때 하드웨어 구성 요소로 입력, 처리, 기억, 출력, 통신 다섯 가지를 제시합니다. 그런데 피지컬 컴퓨팅 단원에서는 입력, 처리, 출력 세 가지만 나옵니다. 가로등처럼 단순한 동작을 하는 기기에는 기억(메모리)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피지컬 컴퓨팅은 이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지컬 AI(Physical AI), 즉 로봇이나 자율주행처럼 물리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AI 시스템이 확산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환경을 인식하고, 판단하고, 과거 경험을 기억하고, 다음 행동을 예측해야 합니다. 기억이 없던 자리에 대규모 메모리가 들어와야 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적 변화는 시장에서 한 번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2022년 말 바닥에서도, 2024년 HBM 수혜가 본격화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가가 먼저 움직이고 뒤늦게 이유가 설명됩니다. 피지컬 AI 전환이 본격화되면 메모리 수요는 지금과 비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늘어날 수 있습니다. 그 시장은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클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짚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장기 낙관론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주가가 이상하게 빠지면 블랙스완 신호로 보라"는 조언은 서로 긴장 관계에 있습니다. 장기 낙관론을 믿는다면 주가 급락을 버텨야 하고, 주가를 선행 지표로 믿는다면 장기 낙관론을 무력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 둘을 조율하는 기준을 이렇게 잡고 있습니다. 펀더멘털 데이터(이익 컨센서스, CAPEX 가이던스)가 여전히 긍정적인데 주가만 빠지는 구간은 버팁니다. 반대로 데이터가 꺾이는 신호가 주가보다 먼저 나온다면 그때는 점진적으로 비중을 줄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메모리 주식을 파야 할 명확한 근거는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단기 주가 흔들림은 있겠지만, 빅테크의 CAPEX 의지와 피지컬 AI라는 다음 수요처를 감안하면 방향 자체가 바뀌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이 글은 개인적인 분석과 경험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아래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