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매출 총이익률(Gross Margin) 84.9%를 기록했습니다. 출근길에 이 숫자를 확인하는 순간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20년 넘게 중견기업에서 일하면서 영업이익률 10%만 넘어도 잘한다고 했는데, 제조업 회사가 80% 중반대 이익을 낸다는 건 처음 보는 숫자였습니다. 그 숫자가 반도체 사이클 논쟁을 어떻게 바꿔놓는지, 그리고 왜 백화점 주식이 반도체 경기와 같이 움직이는지 이 글에서 짚어보겠습니다.
SCA 계약이 반도체 사이클 논리를 흔든 이유
마이크론은 이번 실적 발표에서 매출 414억 달러, 주당 순이익(EPS) 25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시장 예상치였던 매출 355억 달러, EPS 20달러를 모두 크게 웃돌았습니다. 숫자만으로도 충분히 놀랍지만, 제가 더 주목한 부분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SCA(Strategic Customer Agreement), 즉 전략적 고객 계약입니다. 여기서 SCA란 단순한 납품 계약이 아니라 공급자와 고객이 일정 기간 동안 물량, 가격 하한, 구매 의무를 함께 고정하는 포괄적 계약을 의미합니다. 기존에 시장에서 많이 쓰이던 LTA(Long-Term Agreement), 즉 장기 공급 계약이 가격 범위의 상한을 정하는 방식이었다면, SCA는 반대로 가격의 하한을 고정합니다. 팔 수 있는 최저 가격을 못 박고 위는 열어두는 구조입니다.
마이크론은 이 방식으로 2030년까지 5년짜리 계약을 16개 체결했습니다. 이전 실적 발표에서 한두 개 수준이었던 게 한 번에 16개로 늘었습니다. 이 계약들이 커버하는 규모가 전체 매출의 50% 수준에 달하고, 현금 보증금 성격의 재무 약정만 22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걸 보고 저는 그동안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를 들고 있으면서 느끼던 불안감이 상당 부분 걷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반도체를 사이클 산업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이번 발표 이후 그 관점을 재검토하게 됐습니다. 사이클이란 오르다가 내려오는 흐름인데, 하방이 계약으로 막혀 있다면 내려올 구간 자체가 없어집니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이것을 '구조적 성장'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쉽게 말해 올라가기만 하는 구조입니다. 마이크론 어닝콜에서는 "메모리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는 시점을 모르겠다"는 표현까지 나왔습니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휴머노이드 로봇 관련 언급이었습니다. 마이크론 측은 휴머노이드 로봇에는 자동차보다 열 배 많은 메모리가 탑재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아직 로봇이 일상에 깔리려면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 수요가 현실화될 때 반도체 시장의 규모가 어느 수준으로 커질지는 지금으로서는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향후 수십 년"이라는 표현이 단순한 홍보 발언인지 실제 분석에 기반한 것인지는 각자가 판단할 부분이지만, 이 정도 숫자와 계약 구조가 뒷받침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가볍게 흘려듣기 어렵습니다(출처: Micron Technology Investor Relations).
다만 한 가지 보충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SCA 계약 16개가 긍정적이라는 시각이 있는데, 저는 계약 상대방의 재무 건전성과 자체 생산 전환 가능성도 함께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급자에게 유리한 계약은 수요자 입장에서 부담이 될 수 있고, 기술 변화 속도에 따라 계약 조건이 재협상될 여지도 있습니다. 지금 흐름이 강력한 것은 맞지만, 그 구조의 취약점을 함께 따져보는 것이 균형 있는 판단입니다.
- 매출 총이익률(Gross Margin) 84.9% 기록 — 역사적 최고 수준
- SCA 방식 16개 장기 계약 체결, 2030년까지 가격 하한 고정
- 현금 보증금성 재무 약정 220억 달러, 매출의 50% 커버 가능
- 휴머노이드 로봇에 자동차 대비 10배 메모리 수요 예측
- 다음 분기 매출 가이던스 500억 달러, 그로스 마진 86% 제시
반도체 경기와 백화점 수혜, 두 개의 시각
백화점 주식이 반도체 경기와 연동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저도 반신반의했습니다. 에어컨 쐬러 가는 곳이 백화점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수출 증가율과 소비자심리지수(CSI)가 거의 동일하게 움직인다는 그래프를 보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여기서 소비자심리지수(CSI)란 가계가 현재 경기와 향후 소비를 어떻게 전망하는지 수치화한 지표로, 100을 기준으로 그 위면 낙관, 알라면 비관을 의미합니다(출처: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구조는 이렇습니다. 반도체 수출이 증가하면 GDP 성장률이 올라가고, 주식 자산 가격도 함께 오릅니다. 주식 잔고가 늘어나면 실제로 급여가 오르지 않아도 소비 심리가 개선됩니다. 여기에 성과급까지 더해지면 소비 증가는 자연스러운 수순입니다. 제가 직접 주변을 관찰해 봐도 지난 1~2년간 주식으로 수익이 난 지인들이 명품이나 외식 지출을 늘린 경우를 여럿 봤습니다.
여기에 예상 밖이었던 변수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외국인 관광객입니다. 2024년 방한 외국인이 1,900만 명을 넘어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했고, 올해는 2,300만 명 수준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올해 1~4월 누적 방한 외국인 수는 전년 동기 대비 21% 증가했는데 이들이 쓴 돈은 41%나 늘었습니다. 사람보다 지갑이 먼저 두꺼워진 셈입니다. 특히 신세계 본점의 경우 올해 1분기 점포 매출 성장률이 55%, 4~5월 누적으로는 70%를 넘었습니다.
이 흐름을 일본이 먼저 보여줬습니다. 2022년 말부터 외국인 관광객이 몰린 일본 백화점의 외국인 매출 비중은 2024년에 15%까지 올라갔고, 그 기간 동안 주요 백화점 기업 주가가 네다섯 배 상승했습니다. 현재 한국 백화점의 외국인 매출 비중은 8~9%대로 일본보다 2~3년 시차를 두고 따라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것이 '아직 갈 길이 남아 있다'는 주장의 근거입니다.
다만 저는 이 부분에서 한 가지 다른 시각도 있다고 봅니다. 외국인 관광 수요가 백화점에 집중되는 현상이 지금은 선명하지만, 이것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매출로 분산되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실제로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방한 외국인이 역대 최다를 기록하는 동안 100만 명이 넘는 자영업자가 폐업했다는 사실이 이 구조의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낙수효과란 상위 소비 계층의 지출 증가가 하위 경제 주체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려간다는 이론인데, 현실에서는 그 속도와 범위가 생각보다 좁을 수 있습니다.
- 수출 증가율과 소비자심리지수(CSI)는 역사적으로 거의 동일하게 움직임
- 방한 외국인 1인당 소비 효과 = 내수 인구 0.07명 증가에 해당
- 신세계 본점 4~5월 누적 외국인 매출 성장률 70% 초과
- 일본 사례 기준 한국 백화점 외국인 매출 비중 아직 상승 여지 존재
이번 마이크론 실적과 국내 유통 업종 분석을 종합하면 두 가지가 선명해집니다. 반도체는 SCA 구조로 인해 하방이 막혔고, 백화점은 반도체 경기와 외국인 수요라는 두 엔진을 동시에 달았습니다. 삼성전자는 7월 7일, SK하이닉스는 7월 중하순에 실적 발표가 예정돼 있어 앞으로 한 달은 이 흐름을 실적으로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다만 지금 같은 상승 흐름에서도 개인 투자 계획은 필요합니다. 코스피 지수가 일정 수준 이하로 빠질 때 현금 비중을 어느 정도로 가져갈지, 레버리지 상품을 보유 중이라면 손절선을 어디에 둘지 오늘 장만 보지 말고 미리 생각해두는 편이 낫습니다. 올라도 좋고 내려도 대응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두는 것, 그게 결국 오래 시장에 남는 방법이라고 제 경험상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