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월 말, 제 계좌가 이틀 사이에 반토막 났습니다. SK하이닉스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에 상당 부분을 넣어두고 있었는데, 연이틀 서킷 브레이커가 터지는 걸 그냥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리고 8월 초 정부가 레버리지 ETF 보유 한도를 3천만 원으로 제한하는 규제를 시행하면서, 저처럼 털린 채로 버티던 투자자들이 동시에 정리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다음에 벌어진 일들이 지금 시장 구조를 꽤 잘 설명해 주더군요.

코스닥 귀환과 외국인 선물 포지션의 함정
현금을 손에 쥐고 나서 며칠이 지나지 않아 저도 결국 코스닥 종목 몇 개를 다시 담았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규제 이후에 "이제 파생은 그만하자"라고 다짐했는데, 현금이 통장에 앉아 있으니 오히려 더 불안하더군요. 나중에 알고 보니 비슷한 흐름의 투자자들이 꽤 많았던 것 같습니다. 6월까지 코스닥에서 이탈해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로 몰렸던 자금이 규제와 손실이라는 두 가지 충격을 받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으니까요.
시장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이 흐름이 수치로 보입니다.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에는 한때 약 12조 원이 몰렸는데, 이 중 코스닥뿐 아니라 코스피 주요 종목에서도 5조 원 이상이 빠져나와 그쪽으로 유입됐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현대차, 네이버, 두산에너빌리티 같은 종목들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물량이 빠졌던 배경이 바로 이것이었던 셈이죠.
그런데 코스닥이 사흘 연속 오르는 걸 보면서 제가 더 신경 쓰인 건 지수 자체보다 외국인의 선물(Futures) 포지션이었습니다. 선물이란 미래 시점의 지수 혹은 자산을 현재 가격에 사고파는 계약으로, 현물 시장을 움직이는 레버리지 수단으로 활용됩니다. 문제는 국내 파생시장에서 외국인의 대항 세력이 사실상 없다는 점입니다. 선물 계약 30개, 금액으로 환산하면 불과 30억~40억 원 수준으로도 지수가 1% 가까이 움직인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실제로 8월 들어 외국인은 선물 누적 매도를 5조 원 이상 쌓아두고 있었습니다. 장 중에는 매수로 방향을 잡는 척하다가 종가 무렵에 대량 매도를 던지는 패턴도 포착됐습니다. 어느 날은 하루 중 최고 매수 시점 대비 종가 기준 순매도 전환 폭이 1조 5천억 원을 넘기도 했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이런 장에서 개인이 선물로 맞대응하는 건 구조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매수세가 살아나려는 순간 눌러버리고, 다시 올라가려 하면 또 던지는 방식이니까요.
-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 3천만 원 상한 규제 시행 이후, 이탈 자금이 코스닥으로 귀환하는 수급 흐름이 포착됨
- 외국인은 선물 5조 원 이상 누적 매도를 유지하며 지수 상단을 억제하는 포지션 유지
- 국내 파생시장 내 외국인 대항 세력 부재로, 소규모 계약으로도 지수 방향 좌우 가능
- 9월 1일 코스닥 승강제 관련 발표를 앞두고 선취매 성격의 매수세가 개인·기관·외국인을 오가며 교차 유입
반도체 밸류체인: TPU·브로드컴·이비덴이 가리키는 방향
삼성전자 주가가 24만~25만 원대에 머물고 있는 지금, 저는 이 종목을 어떻게 봐야 할지 꽤 오래 고민했습니다. 7월 말 급락의 빌미는 2분기 실적 발표 이후 "3분기부터는 영업이익 성장률이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여러 보고서를 찾아보니, 그 시점에 나왔던 악재들이 지금은 거의 다 해소되거나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바뀌어 있더군요.
핵심 변수 중 하나는 HBM(High Bandwidth Memory)입니다. HBM이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초고속 데이터 전송이 가능하도록 만든 메모리로, AI 연산에 필수적인 부품입니다. 현재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향 물량의 대부분을 공급하고 있고, 생산량의 약 80%가 엔비디아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삼성전자의 HBM은 어디로 가느냐가 관건인데, 여기서 구글 TPU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TPU(Tensor Processing Unit)란 구글이 자체 개발한 AI 전용 반도체로, 엔비디아 GPU와 달리 구글의 AI 서비스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구글은 2028년부터 TPU를 외부 클라우드 서비스에도 판매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습니다. TPU를 만드는 핵심 파트너는 브로드컴(Broadcom)이고, 브로드컴이 쓰는 반도체 기판은 일본의 이비덴(Ibiden)이 주로 공급합니다. 이비덴은 최근 실적 발표에서 에이직(ASIC) 향 전용 공장을 추가 건설하겠다고 밝혔고, 주가가 하루 만에 27% 급등했습니다. 에이직(ASIC)이란 특정 용도에 맞게 설계된 주문형 반도체로, 구글·아마존 같은 하이퍼스케일러들이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적극 채택하고 있습니다(출처: Goldman Sachs).
이 밸류체인의 끝에 삼성전자가 있습니다. 구글 TPU에 들어가는 HBM을 납품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회사가 삼성전자이기 때문입니다. 올해 3분기부터 의미 있는 출하량이 나올 수 있고, 4분기·내년에는 점유율을 상당 부분 확대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구조에서, 삼성전자는 그 외 시장을 노리는 전략인데, 그 '그 외 시장'이 지금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낸드플래시 가격에 대해서는 솔직히 전문가들도 의견이 엇갈립니다. 트렌드포스는 올해 하반기부터 낸드 가격이 꺾일 수 있다고 봤고, 시티그룹은 이를 반박하며 여전히 부족하다고 주장했습니다(출처: Citigroup). D램은 모두가 부족하다고 입을 모으는 반면, 낸드플래시는 데이터센터용 SSD 수요는 견조하지만 B2C 제품군의 재고 일수가 길어지고 있다는 신호도 나옵니다. 삼성전자는 자사 실적 발표에서 "여전히 부족하다"라고 밝혔습니다. 제 경험상 이렇게 의견이 갈릴 때는 공급 측 당사자의 가이던스를 일단 기준점으로 삼는 것이 가장 무난했습니다.
LTA(Long-Term Agreement), 즉 장기 공급 계약도 빠질 수 없는 키워드입니다. TSMC가 고객사와 물량을 미리 확정해놓고 그에 맞게 증설하는 방식으로 가격 협상력을 유지하듯, 삼성전자도 LTA 비중을 60~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수요 예측이 가능해지고, 증설 타이밍도 맞출 수 있어 가격 협상력이 올라갑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HBM 공급 부족이 2031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레버리지 ETF 3천만 원 규제 이후 시장 자금은 어디로 갔나요?
A. 규제 시행 직후 레버리지 ETF에서 이탈한 자금 상당 부분이 코스닥으로 재유입된 것으로 분석됩니다. 원래 코스닥에 있다가 레버리지 ETF로 이동했던 개인 투자자들이 규제와 손실 충격을 동시에 받으면서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흐름을 보였습니다. 코스피 주요 종목에서 이탈했던 자금 일부도 같은 맥락에서 움직였습니다.
Q. 외국인 선물 포지션을 개인이 어떻게 대응하면 되나요?
A. 현실적으로 개인이 외국인 선물 포지션에 맞대응하는 건 구조적으로 불리합니다. 파생시장에서 소규모 계약으로도 지수 방향이 바뀌는 구조인 데다, 자금력 차이가 워낙 큽니다. 대신 하루 장 시작 시 외국인 선물 매수 여부를 확인하고, 지수 방향의 힌트로만 활용하면서 개별 종목 선별에 집중하는 방식이 현실적입니다.
Q. 삼성전자 주가 30만 원대 회복은 언제쯤 가능할까요?
A. 방향은 위쪽이지만 속도는 천천히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외국인 선물 포지션이 지수 급등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잡혀 있고, 시장 전반이 특정 대형주로 쏠리는 것을 건강하지 않다고 보는 시각도 있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가 조만간 발표할 주주환원책(특별 배당 등)이 단기 모멘텀을 줄 수 있으며, 구글 TPU향 HBM 출하량이 3분기부터 가시화될 경우 펀더멘털 측면의 재평가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Q. SK하이닉스 액면분할과 특별 배당은 언제 나오나요?
A. SK하이닉스 측은 연말 안에 주주환원책을 발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시장에서는 액면분할과 특별 배당을 동시에 발표할 가능성을 점치는 의견이 많습니다. 솔리다임(Solidigm) IPO 관련 루머는 SK하이닉스가 공식 부인했으므로, 이 부분을 기대 요인으로 놓는 것은 현 시점에서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Q. 낸드플래시와 D램 전망이 왜 이렇게 엇갈리나요?
A. D램은 공급자·수요자·리서치 기관 모두 "부족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하는 반면, 낸드플래시는 B2C 제품군의 재고 증가 신호와 데이터센터용 SSD의 견조한 수요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어 해석이 갈립니다. 참여 기업 수가 많아 경쟁 구도가 복잡한 것도 전망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단일 리서치 기관의 전망보다 삼성전자 등 공급사의 실적 발표 가이던스를 함께 참고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결론
7월 말 계좌 반토막을 경험하고 나서 제가 배운 건 하나입니다. 파생 구조 안에서 개인이 외국인을 이기려는 싸움은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것입니다. 30억~40억 원으로 지수를 흔들 수 있는 시장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흐름을 읽고, 종목 선별에 힘을 쏟는 것입니다.
지금 시장에서 제가 집중하는 키워드는 구글 TPU→브로드컴→이비덴→삼성전자 HBM으로 이어지는 에이직 밸류체인, 그리고 삼성전자의 LTA 확대입니다. 삼성전자 주주환원 발표 시점과 3분기 HBM 출하량 수치를 함께 보면서 천천히 판단을 쌓아가는 것이 지금 제가 선택한 방식입니다. 너무 급하게 움직이다가 한 번 크게 당해봤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속도보다 방향을 더 믿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