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점 업무를 하다 보면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팀장님, 저는 그냥 은행 예금만 하면 안 돼요?" 나는 그 질문을 들을 때마다 솔직하게 대답한다. "안 되는 건 아닌데, 10년 후에 상대적으로 가난해지는 걸 각오하셔야 해요." 이게 협박이 아니다. 숫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202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금융기관에 풀려 있는 돈은 약 5,500조 원이다. 10년 전에는 2,700조, 그전 10년에는 1,250조. 10년마다 두 배씩 늘어왔다. 앞으로 10년 후엔 대략 1경 원을 넘을 거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게 무슨 뜻인지 곱씹어봐야 한다. 내 재산이 10년 동안 두 배가 되지 않으면, 나는 부자 순위에서 뒤로 밀리는 거다. 가만히 있으면 퇴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얘기다.
은행이 어떻게 돈을 만들어내는지 알면 놀란다
돈이 늘어나는 수도꼭지는 크게 세 가지다. 은행 대출, 한국은행, 그리고 해외에서 유입되는 달러.
그중 제일 굵은 수도꼭지가 은행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있는데, 은행은 예금받은 돈으로 대출해 주는 게 아니다. 누군가 담보를 갖고 와서 1억 원 대출해 달라고 하면, 은행은 금고에 돈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는다. 그냥 통장에 숫자를 찍어준다. 그 순간 세상에 없던 돈 1억 원이 생겨난다. 그래서 대출 창구에서 "오늘은 돈이 다 떨어졌습니다"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거다.
20년 넘게 이 바닥에 있으면서 처음 이 원리를 제대로 이해했을 때 솔직히 좀 당황했다. 그러면 돈은 무한정 만들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물론 그렇지는 않다. 담보가 있어야 하고, 상환 능력이 있어야 하고, 금융당국의 규제도 있다. 하지만 핵심은 이거다. 은행이 대출을 늘릴수록 세상에 풀리는 돈의 양은 늘어난다. 그리고 이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통화량이 늘어나는 게 나쁜 일인가
처음 들으면 불안하다. 돈이 계속 풀리면 내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거 아닌가.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야 할 것도 있다. 통화량이 늘어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경제 규모가 커지는 만큼 돈의 양도 같이 늘어나야 그 경제 활동을 뒷받침할 수 있다. 통화량이 멈추면 기업은 투자를 줄이고, 고용이 줄고, 소비가 줄고, 경제 전체가 수축한다. 그 피해는 부자보다 돈 없는 사람이 먼저 입는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돈이 계속 늘어나야 굴러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문제는 내가 그 늘어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상대적으로 가난해진다는 거다. 1년에 대략 7% 정도의 수익률을 내야 우리나라에 풀리는 통화량 증가 속도에 맞출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정기예금 이자로는 어림도 없다.
주식이 좋냐, 부동산이 좋냐, 답은 없다
이 질문은 20년 넘게 받아왔고, 앞으로도 받을 질문이다. 1986년부터 데이터를 보면 주식이 압도적으로 좋다. 1990년부터 보면 강남 아파트가 코스피를 이긴다. 시작점이 4년 차이인데 결론이 완전히 뒤집힌다.
이게 의미하는 건 하나다. 주식은 언제 사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린다. 비쌀 때 사면 10년을 들고 있어도 아파트 수익률을 못 따라간다. 아파트는 반대다. 언제 사느냐보다 어디를 사느냐가 더 중요하고, 변동성이 작아서 비싸게 사기도 싸게 사기도 어렵다.
사람들은 주식 투자할 때 '뭘 사야 하지'를 고민하고, 부동산 투자할 때 '언제 사야 하지'를 고민한다. 이게 사실 서로 잘못된 고민이다. 주식은 지금이 비싼 시기인지 싼 시기인지를 먼저 따져야 하고, 부동산은 어떤 입지를 선택하느냐가 핵심이다. 고민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변동성이 크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불리하다
주식의 가장 무서운 속성이 바로 변동성이다. +20%, -10%, +20%, -10%로 4년을 굴리면 1억이 1억 1,664만 원이 된다. 괜찮아 보인다. 그런데 +50%, -40%, +50%, -40%으로 굴리면 어떻게 될까. 벌 때 훨씬 많이 버는데도 결과는 8,100만 원이다. 원금보다 줄었다.
이게 수학적 착각이 아니다. 변동성이 크면 잃을 때 더 크게 잃는 구조라서 결과적으로 수익률이 낮아진다. 그래서 변동성을 줄이는 게 투자의 핵심이다. 방법은 두 가지다. 분산하거나, 시간을 늘리거나.
코스피 지수를 기준으로 통계를 보면, 6개월 보유 시 오르고 내릴 확률은 반반이다. 1년이 되면 64대 36으로 벌어지고, 3년이면 80%, 5년이면 93%의 확률로 원금 이상이 된다. 이게 ETF나 지수 투자를 권유하는 이유다. 어떤 거품기에 비싸게 샀더라도 5년을 들고 있으면 93%는 살아남는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값은 왜 떨어지는가
지점에서 채권 ETF 설명할 때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이다. 금리 오르면 채권이 좋은 거 아니에요? 아니다. 정반대다.
1년 후에 만 원을 주는 채권을 내가 9,700원에 샀다. 그런데 시중 금리가 갑자기 10%로 올랐다. 이제 이 채권은 누가 9,700원에 사겠는가. 9,000원에 내놔야 살 사람이 생긴다. 나는 손해를 본 거다. 채권은 시중 금리가 내려갈 때 가격이 오른다. 금리 인하가 예상될 때 채권에 투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만기가 길수록 이 변동폭은 더 크다. 1년짜리 채권과 10년짜리 채권은 똑같이 금리가 1% 올라도 가격 반응이 다르다. 1년만 참으면 되는 채권과 10년을 참아야 하는 채권의 심리적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기 채권 ETF는 주식 못지않게 변동성이 클 수 있다. 채권이라고 안전하다는 생각은 일부분만 맞다.
환율은 왜 이렇게 예측하기 어려운가
금리는 그나마 경기 흐름을 보면 방향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환율은 다르다. 수출 잘되면 달러가 들어오니까 환율이 내려갈 것 같지만, 그 시점에 국민들이 해외 주식 사려고 달러를 사들이면 환율이 오른다. 일본 엔화 시장이 흔들리면 우리 원화도 덩달아 흔들린다. 금리 차이가 있어도 환차손이 두려우면 자금이 이동하지 않는다.
실제로 1960년대 네덜란드는 바다에서 석유가 나오는 바람에 경제가 망가졌다. 석유 팔아서 달러가 쏟아지니까 자국 통화 가치가 올라갔고, 그 덕분에 잘 나가던 수출 기업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예상치 못한 호재가 오히려 독이 됐다. 이걸 네덜란드 병이라고 부른다.
환율에 영향 주는 변수는 물가, 금리 차이, 수출입 규모, 해외 자금 흐름, 인접 국가 환율, 정치 상황까지 뒤엉켜 있다. 그래서 환율 예측은 어렵고, 정부가 개입해서 변동폭을 줄이려는 거지 방향 자체를 바꾸려는 게 아니다.
결국 투자의 핵심은 변동성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통화량이 늘어나는 건 멈추지 않는다. 은행은 대출을 계속 늘릴 거고, 정부는 세금보다 돈을 더 쓸 거고, 해외 자금은 계속 들어왔다 나갔다 할 거다. 이 수도꼭지를 잠글 수는 없다. 그러면 결론은 하나다. 내 자산도 그 속도에 맞춰 불려야 한다.
근데 어떻게? 한 번에 몰빵 하지 말고 나눠서 사고, 오래 들고 있고, 분산하라는 게 결론이다. 뻔하게 들린다. 근데 이 뻔한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의외로 드물다. 주가가 빠지면 못 참고 팔고, 올랐을 때 더 사고, 한 종목에 몰아넣고 불안해한다. 그러면서 왜 돈이 안 불어나냐고 한다.
투자를 잘 못하면 퇴보하는 시대가 됐다고 했다. 거창한 말이 아니다. 통화량이 10년에 두 배씩 늘어나는 현실에서, 재테크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가 됐다는 뜻이다. 그 의무를 어떻게 이행하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 참고 영상: EBS - 이진우의 돈의 흐름, 통화량·금리·환율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