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에 처음 입사하던 해 3월, 선임이 아무렇지 않게 건넨 한마디가 있었습니다. "내일 네 마녀의 날이야. 장 끝 무렵에 이상하게 움직여도 놀라지 마."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 건 다음 날 오후 3시가 넘어서였습니다. 이 글은 그날 경험을 바탕으로, 네 마녀의 날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개인 투자자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풀어쓴 것입니다.

삼성전자가 뉴스 없이 1.5% 빠졌던 날
오후 3시 10분이 넘자 삼성전자 주가가 갑자기 1.5%가량 급락했습니다. 실적 발표도 없었고, 특별한 뉴스도 없었습니다. 저는 모니터 앞에서 굳어버렸고, 이유를 찾으려 화면을 이리저리 뒤졌습니다. 그때 선임이 옆에서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차익거래 청산 물량이야. 프로그램 매도 나오는 거야. 회사가 갑자기 나빠진 게 아니야."
차익거래(Arbitrage)란, 선물 가격과 현물 주가 사이에 생긴 미세한 가격 차이를 이용해 한쪽을 사고 다른 쪽을 팔아 거의 무위험에 가까운 이익을 챙기는 거래 방식입니다. 만기일이 되면 이 포지션을 일괄 청산해야 하기 때문에, 수십 수백 개 종목이 짧은 시간 안에 동시에 매도됩니다.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 손이 근질거렸습니다. 팔고 싶었습니다. 선임은 제 손을 살짝 짚으며 말했습니다. "지금 팔면 내일 아침에 후회해." 다음 날 삼성전자는 전날 낙폭을 거의 다 회복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만기일 장 막판을 절대 건드리지 않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이건 이론이 아니라 몸으로 새긴 경험이었습니다.
네 마녀가 한꺼번에 나타나는 이유
네 마녀의 날, 영어로는 Quadruple Witching Day라고 부릅니다. 한국에서는 매년 3월, 6월, 9월, 12월 둘째 주 목요일이 이 날에 해당합니다. 이 날 이름이 무서운 것은 한꺼번에 만기를 맞이하는 파생상품이 정확히 네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 코스피 200 선물
- 코스피 200 옵션
- 개별 주식 선물
- 개별 주식 옵션
파생상품(Derivative)이란, 기초 자산인 주식이나 지수의 가격 변동을 기반으로 수익이 결정되는 금융 계약을 말합니다. 선물과 옵션이 대표적인데, 이것들은 우유처럼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만기가 되면 계약을 보유한 쪽이 반드시 정리를 해야 합니다. 이 네 가지가 같은 날 동시에 만기를 맞으니, 시장에 한꺼번에 대규모 주문이 쏟아지는 것입니다.
특히 이날 주목해야 할 것이 프로그램 매매입니다. 프로그램 매매란 코스피 200 구성 종목 15개 이상을 묶어 컴퓨터로 동시에 주문을 내는 방식을 말합니다. 사람이 한 종목씩 클릭하는 게 아니라 장바구니에 수십 개를 담아 버튼 하나로 한꺼번에 사고파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장 막판에 아무 이유 없어 보이는 종목들이 동시에 움직이는 현상이 나타납니다(출처: 한국거래소).
왜 겁먹을 필요가 없는가, 그러나 맹신도 금물
이날의 출렁임이 기업 실적이나 펀더멘털과는 무관한 기술적 변동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헤지(Hedge)를 위해 선물을 매도해 뒀던 기관들이 만기에 맞춰 포지션을 청산하고, 차익거래 세력이 쌓아뒀던 현물과 선물의 묶음을 동시에 풀어내는 과정에서 생기는 수급 충격입니다. 여기서 헤지란 보유 자산의 가격 하락 위험을 상쇄하기 위해 반대 방향의 포지션을 취하는 전략을 말합니다. 보험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이날의 변동성을 명절 고속도로 정체에 비유하는 시각이 있는데, 저는 이 비유가 평온한 시장에서는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외국인이 코스피 선물 시장에서 대규모 순매도 포지션을 들고 있는 시점이라면, 만기일 청산 물량의 방향성이 평소보다 훨씬 강하게 작용합니다. 2022년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 당시, 일부 만기일 이후 반등이 며칠 이상 지연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국내 파생상품 시장의 일평균 거래 대금은 수십조 원 규모로, 현물 주식 시장과 맞먹는 수준입니다(출처: 금융감독원). 이 규모의 포지션이 한꺼번에 청산될 때 방향이 쏠리면, 단순한 청소가 아니라 수급 전쟁에 가까워집니다. "다음 날 제자리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는 말과 "항상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말은 다릅니다. 시장 상황을 먼저 읽고 대응하는 것이 진짜 실력입니다.
만기일, 개인 투자자가 실제로 해야 할 행동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 증권사에 있을 때는 만기일을 기회로 활용하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변동성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수익 가능성도 크다는 의미처럼 보였으니까요.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개인이 그날 방향성을 맞히겠다고 들어가는 것은 외국인과 기관의 막판 수급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 모르는 상태에서 룰렛을 돌리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만기일 대응 원칙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오후 3시 이후 계좌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볼수록 손이 먼저 반응합니다.
- 그날은 신규 매수도, 대량 매도도 하지 않는다. 출렁임은 위아래 어느 방향이든 갈 수 있습니다.
- 마침 그 주에 목돈을 넣을 계획이라면 하루 이틀 날짜를 비켜가거나, 며칠에 나눠 분할 매매합니다.
- 장기 투자자라면 그날 종가가 몇백 원 비싸냐 싸냐는 5년 뒤 결과에 사실상 영향이 없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은 결국 이것입니다. 만기일이 주는 불안감 자체가, 잘못된 매매 결정을 유도하는 가장 큰 위험입니다. 그날 선임이 제 손을 짚으며 "지금 팔면 내일 후회해"라고 했을 때, 그 말은 감이 아니었습니다. 수급 구조를 알고 있는 사람의 판단이었습니다.
네 마녀의 날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이 날의 본질이 기업 가치와 무관한 기술적 수급 청산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면, 장 막판의 빨간불과 파란불이 반복되어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투자는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라, 덜 흔들리는 사람이 이기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 글이 이번 목요일 여러분의 손이 근질거리는 것을 한 번이라도 막아줄 수 있다면 충분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실제 투자 결정은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