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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기자 선행매매 (화이트칼라 범죄, 신뢰 자본, 시장 공정성)

by 신연금연구 2026. 6. 16.

2010년대 중반, IR 업무를 겸하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한 경제지 기자가 회사 탐방을 왔고, 미팅이 끝난 직후 제 후배에게 한마디를 남기고 갔습니다. "이 회사 주식 좀 사 두는 거 어때요?" 그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저는 잠깐 말을 잃었습니다. 기사 나오기 전에 미리 사 두라는 뜻이었으니까요. 최근 경제지 기자들이 기사 2,000건을 활용해 약 90억 원을 챙긴 선행매매 혐의로 구속됐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그날 기억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주가조작 합동대응단이 기자 선행매매 혐의로 한국경제신문사를 압수수색하는 경제 언론 불공정거래 사건 보도
주가조작 합동대응단이 기자 선행매매 혐의로 한국경제신문사를 압수수색하는 경제 언론 불공정거래 사건 보도

선행매매가 왜 단순 비리가 아닌 시장 범죄인가

선행매매(Front-running)란 공개되지 않은 정보, 특히 자신이 곧 발행할 기사나 보고서를 이용해 그 정보가 시장에 퍼지기 전에 미리 매매하는 행위입니다. 단순히 "먼저 정보 알고 돈 좀 벌었겠지"로 넘길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범죄는 불특정 다수를 피해자로 만드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 기자의 기사가 나온 날을 기억합니다. 장 시작과 동시에 해당 종목이 뛰었고, 그 기사를 믿고 뒤늦게 매수에 나선 개인 투자자들은 고점에서 물린 셈이 됐습니다. 피해자가 한 명이 아니라 수천, 수만 명이 되는 이유입니다.

자본시장법상 미공개 중요 정보를 이용한 거래는 불공정거래 행위로 규정됩니다. 여기서 미공개 중요 정보란 공식 공시나 발표 전에 주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보를 의미하며, 기자가 작성 중인 기사도 이 범주에 해당한다는 게 법원의 일관된 판단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신뢰 자본의 손실입니다. 신뢰 자본이란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시장 전체의 신뢰도를 뜻합니다. 한 번 무너지면 회복하는 데 수년이 걸리고, 그 피해는 개별 투자자가 아닌 시장 전체가 떠안게 됩니다.

실제로 한국거래소가 집계한 불공정거래 적발 현황을 보면, 최근 수년간 시세 조종과 미공개 정보 이용이 전체 적발 건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거래소). 단순히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반복되는 문제라는 뜻입니다.

이 범죄가 더 나쁜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범행이 치밀하고 계획적이며, 전문 지식과 사회적 신뢰를 도구로 사용한다
  • 피해자가 개인이 아닌 불특정 다수의 시장 참여자 전체이다
  • 직접 금전 피해 외에 시장 신뢰도라는 무형의 자산을 훼손한다
  • 적발이 어렵고, 적발돼도 처벌 수위가 낮다는 인식이 반복적 범행을 부추긴다

유럽의 주요 선진국에서는 내부자 거래(Insider Trading)와 주가 조작을 가장 엄하게 처벌하는 범죄 유형으로 분류합니다. 내부자 거래란 직업적 지위나 관계를 통해 얻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거래하는 행위를 말하며, 미국 SEC(증권거래위원회)는 이를 적발할 경우 개인에게 최대 수백만 달러의 민사 제재금과 20년 이하의 징역을 병과 할 수 있습니다(출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반면 국내에서는 아직도 처벌이 솜방망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습니다. 90억을 벌었다면, 그것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환수하지 않으면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없습니다. 이익보다 손실이 커야 범죄를 막을 수 있다는 건 경제학의 기본 원리입니다.

비판의 방식에도 공정성이 필요하다

이 사건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제가 주목한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어느 신문사인지 공개하라"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정작 방송에서는 그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장면이었습니다. 이미 압수수색이 이뤄졌고, 여러 매체에서 신문사 이름이 보도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들끼리 봐준다"라고 비판하면서 자신들도 이름을 말하지 않는 것은 모순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비판하려면 그 기준을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해야 합니다.

더 조심스러운 부분은 "경제지 기자들이 다 문제"라는 식의 일반화입니다. 저도 IR 담당자로 수많은 기자를 만났고, 대부분은 기본적인 직업윤리를 지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떤 기자는 저희 회사에 불리한 사실을 확인한 뒤에도 정확하게 보도했고, 그 기사가 나간 날 주가가 빠졌지만 저는 그 기자를 오히려 신뢰했습니다. 소수의 범죄를 전체 업계의 구조적 부패로 확장하는 논리는 자칫 올바른 경제 보도마저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

물론 일부의 잘못이 드러났을 때 더 강하게 응징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합니다. 그래야 원칙을 지킨 기자들이 오히려 인정받는 환경이 만들어지니까요. 제 경험상 이건 분명합니다. 애널리스트로 일하면서 분석 기업의 실적 개선 가능성을 먼저 파악했을 때, 친구에게 대신 사 두게 하고 리포트를 쓰는 건 가능했지만 하지 않았습니다. 규정보다 스스로의 윤리 기준이 먼저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기준을 가진 사람들이 다수이고, 그들이 보호받으려면 오히려 소수의 범죄에 대한 처벌이 더 명확하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이 사건이 진짜 의미를 가지려면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과 동시에, 신문사 이름 공개, 불법 이익 전액 환수, 그리고 언론사 내부의 매매 제한 시스템 강화가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ROE(자기 자본이익률)처럼, 처벌의 효과를 높이려면 범죄로 얻은 이익 대비 손실이 압도적으로 커야 한다는 논리가 여기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이 글에서 다룬 사건의 본질은 결국 하나입니다. 자본시장의 공정성은 법과 규정만으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시장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의 직업 윤리가 기반이 돼야 합니다. 그 윤리가 무너졌을 때, 피해는 가장 정보가 없는 개인 투자자에게 집중됩니다. 비판의 목소리는 크게 내되, 그 방식만큼은 스스로도 공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법률 또는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sS3xHegHP7E